등록 : 2005.01.10 21:46
수정 : 2005.01.10 21:46
“마음이 시켜 여기 산다우”
인적도 전기도 없는 산골 산오르다보면 해가 훌쩍 찾아오는 이 마냥 반갑지
주왕산 남쪽자락과 맞닿아 있는 영덕군 달산면 용전리에 갓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다. 갓을 쓴 사람 모습의 바위 셋이 나란히 서있어 갓바위산으로 불린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찾는 이 산 들머리에 ‘갓바웃골 할매’가 산다.
얼음이 꽝꽝 언 계곡을 오르다 보면, 너른 마당에 덩그러니 서 있는 조립식 건물과 마주친다. 마당에는 땔감나무가 어른 키높이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마루문을 열면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가마솥이 부뚜막에 걸려있고, 마루 한쪽에는 요강이 얹혀있다. 갓바웃골 할매집은 60여 가구가 올망졸망 모여사는 용전리에서 3㎞나 떨어져있다. 가까이 집터는 있지만 이웃이 아무도 없다. 전기와 상수도도 들어오지 않는다.
“누구요? 추운데 들어오소.”
이난이(75·사진) 할머니는 빼꼼히 문을 열어보는 등산객들의 손을 잡아 끌어 방으로 들인다. 방 한쪽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고, 촛대 서너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 흔한 냉장고나 텔레비전도 없다. 찾아드는 사람마다 “왜 혼자 여기서 사냐”고 묻는다. 할머니의 대답은 한결같다. “내 소원이 깊은 산, 높은 산, 우묵한 데 사는 거였어. 35년 동안 찾았는데 여기가 그 자리야. 내 마음이 시켜서 왔지, 딴 건 없어.”
영덕읍에서 살던 할머니는 2002년부터 이곳에 들어와 혼자 산다. 자식 6남매와 여든 두살 된 남편이 말려도 막무가내로 이사를 고집했다. 말리다 못한 자식들이 터를 사들여 조립식 건물을 지어줬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읍내에 사는 맏아들이 먹거리와 생필품을 날라다 준다. 장마가 지난 뒤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이어지는 계곡 길이 끊어져 애를 먹는다.
할머니는 새벽 3시면 일어나서 불공을 드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엘피지 가스통에 가스레인지를 연결해서 밥을 지어 먹고, 해가 지면 촛불에 의지한다. 겨울 들면서 계곡에서 퍼올려쓰던 수도관이 얼어붙어 마을에서 물을 길어다 쓴다. 여름에는 차가운 계곡물에 음식을 담가둬도 이내 쉬어버린다. 그래서 여름 반찬은 된장이 전부다. 자식들이 간이 발전기를 설치해뒀지만, 할머니는 쓸 줄을 모른다. 방 천장에 달아둔 형광등은 일년에 서너번 불을 밝힐 뿐이다. 부처님오신날 등 특별한 날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신도들이 와서 발전기를 돌려 전깃불을 켠다. 할머니는 “낮에 산에 올라가 명상하고 기도를 하다 보면 하루해가 금세 저물어 적적할 새도 없다”고 말한다. 영덕/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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