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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3시께 대구시 동구 방촌동 신문지국에서 김은혜씨가 배달용 오토바이에 신문을 옮겨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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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벌써 15개월째 세상이 곤히 잠든 오전 2시께 눈을 뜬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지국에서 나와 신문을 받아들고 오전 3시부터 4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길을 달린다. 주택, 상가,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독자들의 현관문 앞에 신문을 들여놓는다. 중학교 때부터 몇 달씩 꾸준히 신문배달을 해 온 터라 하루에 300부를 혼자서 돌린다. 같은 지국의 다른 배달원들 두 사람 몫을 거뜬히 해치운다. 새벽 2시 하루 시작“배우는게 많죠”
“일 끝나도 요가·유학준비로 바빠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김씨는 휴학을 하고 외국에서 미술 공부를 할 학비를 벌고 있다. 패스트 푸드점부터 새벽 도매시장까지 벌이가 짭짤한 ‘알바’라면 안해본 게 없는 그가 신문배달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밀려드는 아침을 꾸역꾸역 맞는 사람들에 앞서, 삶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사람들이죠. 벌이도 괜찮지만 새벽을 사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한 동네를 돌다보니 새벽일을 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신문을 돌리는 사람을 만나면 같은 아파트는 서로 도와가며 돌리기도 하고, 우유배달 아줌마가 빙긋이 웃으며 우유 한 병을 내밀기도 한다. 청소하는 아저씨와 함께 서서 자동판매기의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눈다. 한 겨울 얼어붙은 눈길에서 하루에 세번씩 오토바이가 굴러도 그가 신문돌리기를 고집하는 데는 “잠을 줄여서 미래를 저축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그는 낮에는 과외를 하고, 영어와 미술학원을 다니며 유학 준비를 한다. 벨기에에서 미술 공부를 한 뒤 영상 미술 분야에서 일을 하겠다는 그에게 ‘새벽’은 무한한 상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신문 300부를 다 배달하고 지국에 오토바이를 세워두면 새벽일은 끝이난다. “빈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올 때면 알 수 없는 뿌듯함으로 기분이 상쾌하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의 발걸음은 요가교실로 향한다.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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