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28 13:45
수정 : 2013.09.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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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앞에서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맨 오른쪽)이 채동욱 검찰총장 진상규명 결과를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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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 의혹으로 혐의 단정 보도한 조선일보 화법 재활용한
법무부의 “채동욱 총장 의혹 자료 확보” 긴급 기자회견
<조선일보>나 법무부나….
빼닮았다. 법과 원칙을 다루는 정부 주무부처의 진상 조사 수준이 저널리즘 원칙의 기본을 거스른 <조선일보> 보도와 매일반이다. 전문성은 안 보이고 의도와 목적만 보인다. ‘반박 불가능한 팩트를 제시’하는 치밀함보다 ‘어떻게든 내쫓아야 한다’는 다급함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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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감찰 착수에 불복하며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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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피우면서 ‘먼지 털기’ 시도
법무부는 9월27일 발표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진술과 자료가 확보됐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채 총장 감찰을 지시한 지 2주 만에 내놓은 결과다. “다각도로 확인한” 진상은 3가지였다. ①채 총장이 혼외아들을 낳았다는 여성 임아무개씨의 부산 카페와 서울 레스토랑에 상당 기간 자주 출입 ②10년 전 임씨가 고검장이던 채 총장 사무실을 방문해 부인임을 자칭 ③<조선일보> 첫 보도 직전인 9월6일 새벽 잠적.
법률전문가임이 의심스러운 결론이다. ①과 ③이 채 총장과 임씨의 혼외 관계를 입증하는 ‘진상’이 될 순 없다. ①은 다각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②도 현재까지는 임씨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임씨가) 채 총장의 혼외자란 판단을 내린 건 아니”라면서도 혼외자란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발표에서 <조선일보> 보도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정황 의혹을 “(사실로) 밝혀졌다”고 단정한 <조선일보>의 화법을 법무부는 내용만 바꿔 재활용했다. <조선일보>처럼 법무부도 당사자 확인을 거치지 않고 ‘질렀다’. <조선일보>와 법무부가 ‘채 총장을 내쫓는 과정’에서 공유한 기술은 팩트 확증을 통한 의혹 규명이 아니라 팩트라고 주장하는 것을 통한 여론몰이다. <조선일보>는 학적부 기록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지만 법무부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 “자료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채 총장에게 구린 구석이 많다’는 연기만 피웠다. 법무부는 채 총장의 11년 전 수사기록까지 요구하며 ‘먼지 털기’도 시도했다.
법무부 발표는 금요일 오후 5시께 이뤄졌다. 요일과 시간이 중요하다. 여론공학 측면에서 금요일 저녁은 ‘마의 시간’이다. 언론사가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운데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언론의 공백’을 누릴 수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의혹 첫 보도(9월6일)→황 장관의 채 총장 감찰 지시(9월13일)→법무부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9월27일)가 모두 금요일에 이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법무부의 ‘감찰 카드’는 실효성 논란으로 역풍을 맞고 있었다. 의혹을 전혀 해소하지 못한 법무부 발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손을 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두고 비등하는 비판 여론의 우회로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 채 총장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 황 장관의 감찰 지시에서 엿보인 청와대의 의중은 사표 건의에서 재확인됐다. 사표 수리가 이뤄지면 ‘일반인 채동욱’에 대한 감찰은 불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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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함께하는시민행동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채동욱 검찰총장 감찰을 위한 임아무개씨 모자 개인정보 유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선일보 기자와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한 공익고발 접수장을 내러 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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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공백’을 노린 발표 시점
진실 규명 방법으로 ‘하나의 소송’(<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채 총장의 정정보도 소송, 9월24일)과 ‘하나의 고발’(<조선일보> 기자들과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상대로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의 검찰 고발, 9월26일)이 남아 있다. 정정보도 소송은 언론 보도의 ‘기술적 타당성’을 따진다. 사건의 실체 규명을 기대하긴 어렵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수사권을 갖고 있다. 검찰 수사는 <조선일보> 보도와 해당 아동 개인정보 불법수집 및 청와대 민정의 개입 의혹을 밝힐 현실적 수단이다. 법무부 감찰이 채 총장을 향했다면, 검찰 수사는 권언유착을 겨냥한다. 검찰의 선택에 따라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 수도, 더한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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