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27 21:05
수정 : 2014.04.2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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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지역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조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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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너나없이 동참
실종자 가족 위한 배식·설거지·청소
안산 택시기사들 무료 운행봉사
“마음 모으자” 자발적 성금 23억
정부는 무능하기만 했지만 시민들은 큰 슬픔 앞에서도 성숙한 의식을 보여줬다. 세월호 침몰사고 초기 대응부터 구조, 수색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허둥대는 사이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전남 진도와 경기 안산에서는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24시간 세월호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 지원에 나서고 있다. 희생자를 돕기 위한 성금 모금에도 마음을 나누려는 손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27일 오전 9시 경기도 안산시 와우스타디움 앞. 전세 버스 1대에 안산라이온스클럽 회원 45명이 차례로 올랐다.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중인 안산시여성단체협의회 소속 자원봉사자들과 임무를 교대할 이들이다. 이들은 오후 3시께 팽목항에 도착해 자원봉사에 나섰다. 실종자 가족을 위한 배식과 설거지, 청소 등이 이들의 몫이다. 28일 오후에는 안산시 로보캅 자원봉사자들이 이들과 교대한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김아무개씨는 “내가 아는 분도 실종자 가족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울고 따뜻한 미음이라도 먹여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진도 현지 자원봉사가 시작된 것은 사고 직후인 17일 새벽 3시께부터다. 안산사랑운동본부 김혜자 사무국장이 자원봉사자 24명과 함께 진도 현장을 찾은 뒤 지난 18일 ‘단원고 돕기 안산시 시민단체협의회’를 꾸렸다. ‘참안산사람들’ 등 현재 58개 시민단체가 참여해, 지난 18일부터 매일 1개 단체씩 돌아가며 현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신도 수년 전 사고로 자식이 다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김혜자 국장은 “진도에서 엄마 아빠들이 공황상태 속에서 ‘구조해달라’고 절규하는데, 정부는 우왕좌왕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날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서도 “부모님들의 피 끓는 심정을 정말 헤아렸다면 지금 총리가 사직한다고 말해야 하나. 무책임하다”고 했다.
슬픔을 극복한 성숙한 시민의식은 안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임시분향소가 있는 안산 올림픽기념관과 단원고 앞, 수원·안양·성남의 화장장, 그리고 10여곳의 안산·시흥지역 장례식장에서 안산시 자율방법대, 안산초·중·고 학부모 봉사단, 안산시 개인택시조합 등의 단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학부모와 택시기사는 물론 일을 마친 직장인들도 힘을 보탠다.
임시분향소 건너편에서는 전국택시산업노조 안산지부 소속 법인택시 기사들이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나와 매일 아침 8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평균 200여차례 유족과 학생들을 무료로 태워주고 있다. 10여명씩 하루에 2개조로 나눠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택시회사에 내야 할 사납금 7만3000원은 노조가 대신 내준다. 대신 기사들은 자신들의 하루 수입을 포기했다.
신동한 전국택시산업노조 안산지부장은 “유족을 태우고 가며 이야기를 하다 슬픔에 겨워 함께 울기도 한다. 하지만 택시기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자원봉사가 어려운 시민들은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나눈다. 사고 하루 다음날인 지난 17일 인터넷 포털 다음과 네이버에서는 한 누리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생존자 무사귀환과 희생자를 위한 응원 댓글을 달고 모금을 하자”는 청원을 시작했고 18일부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집행기관으로 지정해 모금에 나섰다. 열흘 만인 이날 현재 ‘다음 희망해’에 6만7075명, ‘네이버 해피빈’에 11만8637명이 참여해 7억4189만원을 모으는 등 지금까지 전국에서 모두 18만여명이 참여해 23억원을 모금했다.
지난 19일 자체 누리집에 모금 사실을 뒤늦게 공지한 전국재해구호협회에도 성금이 답지했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은 물론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보탰다. 4월 한 달치 월급 370만원을 보내온 현직 경찰관도 있다. 교도소와 국외에서도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전국재해구호협회 홍선화 차장은 “다른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모금에 나서면 ‘왜 우리가 돈을 내냐. 정부가 해야지’ 하는 반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는 그렇게 무능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세월호의 유족과 실종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안산/홍용덕 김일우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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