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힌 채 쫓겨나고 막말 듣는 기자들…
자성의 목소리 높지만 전에 없는 냉소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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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5일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정부합동분향소.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생존한 학생의 부모들이 선생님 영전 앞에 빨간 카네이션 바구니를 놓았다. “우리 애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학생 유가족과 선생님 유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졌다. 취재수첩을 든 기자들도 대화를 들으려고 한 발짝 다가갔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유가족이 말했다. 조금 뒤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기자들은 다시 유가족에게 모여들었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메아리가 퍼져나갔다.
기념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앞에 서서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대책위의 협조를 받아 몇몇 유가족을 인터뷰할 참이었다. 주변에 벤치도 있었지만 왠지 앉아서 기다리기가 죄스러웠다. “여기 서 있으면 안 됩니다.”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대기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다 들리지 않습니까.” 그의 시선은 내 취재수첩을 향해 있었다. 몰래 취재하는 중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나는 유가족이 싫어하는 기자가 어쨌든 맞으니까.
한국 언론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고들 한다. 멱살이 잡힌 채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고 카메라가 내동댕이쳐진다. “개새끼야, 그게 기사야”라는 욕설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도 듣고 있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어쩌다가 언론이,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한겨레21>은 세월호 피해 가족과 자원봉사자, 언론학자, 시민활동가 등에게 ‘우리가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두루 물었다.
1. 빠른 뉴스, 막말 뉴스
4월16일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가 나왔다. 특히 MBC 기자들은 “최악의 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지만 MBC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목포MBC 기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 11시쯤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해경 경비정과 헬기, 어선들은 잠긴 선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전혀 손쓰지 못했고 잠수요원도 볼 수 없었다. 현장 기자는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구조자가 160여 명”이라는 말을 들었고, 서울MBC 전국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MBC는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학생 전원 구조”라고 보도했다. 전국MBC기자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라고 고백했다.
언론의 오보로 유가족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방심한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단원고 학부모들은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아들·딸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선체가 전복될 때까지 경찰 간부후보생 졸업식 행사에 참석했다. 그가 진도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10분쯤이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세월호 사건처럼 오보가 많았던 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생명이라 언론에 대한 신뢰가 그냥 무너졌다. 처음 한 번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더라도 오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반성하고 더 신중하게 보도해야 했다. 하지만 속보 경쟁에 매달려 계속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난 7년간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가 지속됐다. 그사이에 기자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취재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본다.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볼 수 없는데 기자들이 그렇게 돼버렸다.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문제가 된다’라는 기득권자의 관점이 언론사 내부까지 뿌리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2. 윗물이 썩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교통사고 사망자 비유(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전언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나 박상후 MBC 전국부장의 발언(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성명서 “그런 ×들 (조문)해줄 필요 없어”)은 사회적 비난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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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방송을 이끌어야 할 공영방송은 오히려 믿음을 주지 못했다. 지난 5월7일 방송된 MBC 박상후 전국부장의 리포트는 구조에 참여한 민간 잠수부의 죽음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려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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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어떻게 '쓰레기'가 됐나 [21의 생각 #271]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볼 수 없는데 기자들이 그렇게 돼버렸다.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문제가 된다’라는 기득권자의 관점이 언론사 내부까지 뿌리내린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가족들: 왜 이렇게 인력을 적게 투입하나요? 해경 국장: 오늘부터는 날씨와 무관하게 전원 투입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수십 개의 언론사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장면을 찍었고, 한두 언론은 생방송을 한다고 소리쳤지만, 이 장면이 제대로 보도된 언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서) 언론은 초기에 정부의 엉터리 구조 작업을 비판하지 않았다. 선장과 승무원의 태도, 청해진해운 등 사고 원인과 책임자 처벌로 순식간에 취재 초점을 넘겼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청와대와 정부를 감싸기 위해서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진단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뉴스를 정권에 헌정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보인다.”(김언경 사무처장) 정연우 세명대 교수(언론학)는 “명절 때 고속도로 상황을 중계한다고 헬기를 띄우는 언론이 세월호 사건 때 헬기도 안 띄웠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사고 현장 방문 보도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불안과 분노로 격앙돼 거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를 냈지만 KBS와 MBC는 이러한 분위기를 지워버렸다. KBS 기자는 이를 ‘날조’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의 발언 뒤 박수갈채는 연단 위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공무원과 경호원의 것이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공무원의 반응이 마치 가족의 반응인 것처럼 둔갑했다.” 4. 뻔뻔하다 언론을 향해 표출하는 분노와 불신은 달라진 언론 환경과도 닿아 있다.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기록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서 기자가 독점적으로 누려온 지위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까닭이다. 현장을 전하는 신속성과 생생함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미 기존 언론을 무릎 꿇렸다. ‘현장의 목격자 모두가 기자’인 시대에 기자가 전하는 정보 자체보다 기자가 정보를 전하는 태도가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래서 취재 업무만을 앞세우는 기자들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사고 당일 구조자가 나오는데 기자들이 몰려가 질문을 쏟아냈다. 서둘러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인데 기자한테는 그냥 취재 대상일 뿐이었다. 천불이 나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또 누군가 필요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빈다. 아주 질렸다.”(자원봉사자 이석준·24·가명) “5월8일께 진도체육관에서 피해 가족들이 식사하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언론사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몰래 찍다가 걸렸다. 가족들이 화내고 자원봉사자들이 말리고 경찰이 오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 게다가 취재 과열이나 경쟁으로 언론사가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도는 나가지 않는다. 제 살 깎아먹기이지만 보도하지 않으면 자정 기능을 상실하지 않나.”(자원봉사자 박수동·27) 4월24일 사고 9일 만에 등교를 재개한 안산 단원고 3학년 한 여학생이 언론인의 꿈을 포기하며 쓴 글(‘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엔 무례한 기자들을 향한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저의 꿈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업적을 쌓아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에 반발하며 청소년들에게 침묵행진을 제안하는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던 고등학생 양지혜양도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조건 마이크를 갖다대고 있는 기자들과 그 상황을 강제하는 취재 시스템에 화가 났다. 장래에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기자들을 보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무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죽음의 공포에 내던져진 가족들과 만나는 기자들은 인간적으로도 미성숙했다. 자원봉사자 박수동씨의 경험담이다. “진도체육관 2층에서 한 남자 기자가 게임을 하고 있더라. 게임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했는지 눈치를 계속 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걸 보며 ‘저 사람들은 그냥 최소한의 공감도 안 되나보다’ 생각했다. 기자들은 가족에게 주는 고급 도시락이나 햄버거, 이런 것도 아주 잘 챙겨 먹더라. 어떤 자원봉사자는 기자들이 많은 모텔에 묵었는데 방 앞에 술병, 치킨 상자 같은 게 쌓여 있어서 황당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비극의 현장’인데 그들에겐 ‘일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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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9〉 손석희 앵커를 향한 실종자 가족들의 환대는 기성 언론에 결여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시민들이 언론에 기대한 것은 특종보다는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질문하는 태도였을지 모른다.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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