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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양경찰서 박아무개 경사는 21일 밤 11시께 인터뷰를 마치고 전남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지난달 17일 밤부터 14시간 동안 머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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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목포해경 박 경사에게 생긴 일
▶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관의 아파트에서 잠을 잤고, 당시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1시간45분간 작동을 멈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 계획이 없다”던 합동수사본부는 최근 폐회로텔레비전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피의자를 집에 재운 행동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해당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조직도 해체되고, (조직이) 저를 보호해주지도 않고… 그런데 참 질기시네요잉.”
21일 밤 9시30분께 전남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아파트 근처 빵집에 한 경찰관이 들어섰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자신의 아파트에 재운 목포해양경찰서 박아무개 경사다. 수차례 만남을 거절하던 박 경사가 인터뷰를 하는 데 동의하고 뒤늦게 약속 장소에 나왔다. 굳은 얼굴의 박 경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차라리 글로 쓸게요”라고 말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처음 나선 그는 기자가 노트북을 내어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박 경사와 기자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박 경사는 A4 용지 1장 반 분량으로 글을 남겼다.
“저는 목포해양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사 박○○입니다. 우리 경찰서 수사계 합동수사본부 업무 지원을 하던 중 합동수사본부의 지시에 의해 선장 이준석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 당시 지시 사항인 여관으로 선장을 데리고 가려 했으나 기자들이 따라와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판단에 의해 기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선장을 본인의 아파트로 데리고 갔으며 그때 만약에 여관으로 갔다면 수많은 기자들에 의해 여관 주변을 포진했을 것이며 또한 만약의 사태이지만 본조사를 하기 전 선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선장의 신변이 이상 없어야만 정확한 사고 원인 및 관련자들의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며 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을 예방할 것입니다. 당시 집에는 처와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죽했으면 선장을 집으로 데리고 갔겠습니까. 처는 곧바로 세월호의 선장이라는 것을 눈치챈 후 애들을 남겨놓은 후 처갓집으로 갔습니다.”
선장을 여관에 데리고 가던 경찰관은 취재진 차량을
따돌리려 아파트에 들어갔다
후배 경찰관에게 신병 관리를
당부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선장이 아파트를 떠난 뒤
아파트 CCTV가 멈췄다
우연일까 의도적 삭제일까
수사 필요없다던 검찰은
뒤늦게 CCTV 분석에 들어갔다
“선장이 살아야 진실 규명 될 거 아니냐”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날,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관의 아파트에서 머무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국가적 재난을 일으킨 당사자로 조만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한 피의자를 경찰관의 집에서 재운 상황은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게다가 선장이 아파트에서 14시간을 보낸 당일 이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1시간45분간 작동을 멈춰 ‘제3자’가 이 선장을 만나고 갔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키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이준석 선장이 해양경찰 수사관 집에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수사력을 집중했던 검경합동수사본부(합수부)는 논란 직후 “수사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수사 대상이 부실 구조를 한 해경으로 옮겨가면서 검찰은 뒤늦게 이 선장이 머문 아파트의 폐회로텔레비전 하드디스크를 확보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이봉창 형사1부장은 “해당 경찰관 아파트의 폐회로텔레비전이 기계적 결함 때문에 작동을 멈췄는지, 편집된 것인지, 편집됐다면 누가 의도를 갖고 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분석중이다.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구조 과정까지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폐회로텔레비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선장을 재운 박 경사의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 하드디스크를 확보했으나 박 경사를 따로 조사하진 않았다. 논란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당사자인 박 경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박 경사와 기자는 노트북을 사이에 놓고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빵집에서의 인터뷰였지만, 인터뷰 분위기는 경찰서 조사실처럼 무거웠다. 박 경사는 합수부에 속한 이 선장의 수사관이 아니라 합수부 업무를 외곽에서 돕는 지원팀에 속해 있다. “제가 진짜 참 어렵습니다. 오늘 삼십며칠 만에 퇴근하고 처음 집 앞에서 소주 한병을 먹었어요. 차박차박 길을 걸어오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잖아요. 청해진과 결탁됐다느니. 이 사람(선장)이 살아야만 실체적 진실이 규명이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몰라주고 저만 뭐라 하고. 제가 오죽했으면 국회 가서 선서하고 다 말한다고 했겠습니까. (이 선장) 신변에 이상이 생겨봐요. 생기면 생겼다고 또 난리겠죠. 사람이 수백명이 숨졌는데 선장 놔두면 테러 당해요. 여관 간다고 해도 받아주지도 않아요. 지역 사회에서, 목포에서 얼마나 민감한데. 아, 근데 조사만 하다가 제가 (조사를) 받으려니까 이상하네요.” 박 경사는 ‘해경 아파트에서 묵은 이 선장’ 보도가 나간 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감찰 조사를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물을 들이마시거나 인터뷰 중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도 했다. “목포해양경찰서를 나선 시간이 17일 밤 9시40분쯤이에요. 합동수사본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건 밤 9시35분이고요. 저는 그날 오후에 팽목항에서 희생자 신원을 파악하는 업무를 맡았고 합수부 업무 지원도 했어요. 세월호 선장 이준석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당시 혼자는 못 가겠으니 인원 한명을 추가해 달라고 했어요. 저는 차량에 타고 대기하고 있었고 수사과 직원 두명이 선장을 데리고 나왔죠. 그런데 기자들이 선장을 둘러싸서 간신히 선장만 제 차량에 타는 바람에 원래 함께 가기로 한 직원은 타질 못했어요. 선장과 저만 차에 타게 된 거죠. 이후 경찰서 근처 여관에 가려고 했는데 취재 차량을 따돌리느라 힘들었어요. 수시로 차량 룸미러를 통해서 선장의 상태를 확인했고요. 선장에게 ‘이러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여관에 갈 수 없겠다’고 말을 하자 선장이 말은 안 하고 고개는 푹 숙인 채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우리 집에 가는 게 차라리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승낙을 했어요. 우리 경찰서 후배 직원에게는 제 아파트로 오라고 전화를 했죠. 그날 밤 제 집에 도착한 게 밤 10시10분쯤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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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양경찰서 3층에 꾸려진 검경합동수사본부. 조만간 조직이 해체될 목포해양경찰서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경찰관도, 흘러나오는 이야기 소리도 없었다. 세월호 부실 구조로 감사를 받고 있는 해양경찰서 복도 창문 밖으로 쪽빛 바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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