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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권남희 씨는 1년 사이 10년을 산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고,
아버지 박창국 씨는 몸무게가 십킬로그램 이상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고통과 마주한 부모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 푼수처럼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헤어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복이네 가족의 1년을 사진으로 여기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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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 씨가 3월 31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인양 촉구 집회를 마친 뒤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다. 권 씨는 이날 버스에서 "이 길을 백번 넘게 다녔는데 아직 진상조사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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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행동‘ 문화제가 열린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성복 군의 아버지 박창국 씨(가운데)와 어머니 권남희 씨(왼쪽 두번째)가 ‘진상규명 가로막는 시행령을 폐지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너희들이 범인이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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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씨가 2014년 12월 6일 저녁 경기도 안산 집에서 고 박성복 군의 할아버지 팔순잔치 상을 차리던 중 남편 박창국 씨가 준 고기쌈을 먹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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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씨가 3월 2일 안산 단원구 원곡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고등학교 입학식에 앞서 딸 박성혜 양의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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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왼쪽 세번째부터) 씨와 아버지 박창국 씨가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차려진 세월호 참사 분향소 입구에서 국화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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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했는데 부부는 늘 바빴다. 창국 씨는 한 주씩 주·야간을 바꿔가며 2교대로 일했다. 남희 씨도 격일로 오전 9시께 일을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 9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밥벌이로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다. 남희 씨는 “안산에 시화방조제 가봤어? 30분이면 가는데 거기서 어묵 하나 사 먹고 돌아오곤 했어. 근데 다른 가족들은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많이 다녔더라고. 우리 가족은 나들이가 전부야”라며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들떠있던 성복이를 떠올렸다. 성복이는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어머니를 위해 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약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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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기지회견’에 참가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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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인 아들 박성복 군의 영정사진을 목에 건 채로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 국민도보행진’에 참가한 권남희 씨(앞줄 가운데)가 도보행진 둘째날인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를 지나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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