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29 20:11
수정 : 2015.10.29 22:25
학교 현장서 교과서 국정화 맞서
평범한 역사교사들까지 1인시위
일부선 지지학생들도 ‘피켓’ 동참
학생들·동료 교사들 응원 이어져
“날도 추운데…내복은 입으셨어요?”
“선생님, 힘내세요!”
10월 들어 가장 쌀쌀했던 29일 아침, 경기도 ㅂ여고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역사 교사의 발 밑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캔음료가 하나둘 늘어갔다. 등교하던 학생들은 캔커피와 유자차를 내밀었고, 출근하는 동료 교사는 뜨끈하게 데워진 쌍화탕을 건넸다. 이 교사는 ‘국정 교과서로 수업하기 싫은데 어쩌지’라고 적힌 국정화 반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대통령이 강하게 힘을 싣고 있는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1인 시위였지만, 학생과 동료 교사들은 아랑곳 않고 따뜻한 말과 음료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라 첫날에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랐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아이들이 먼저 반갑게 인사하더라고요. 어떤 아이들은 자기들도 같이 하면 안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ㄱ교사를 포함한 이 학교 역사 교사 4명은 지난 26일부터 나흘째 교문 앞에서 교대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ㄱ교사는 역사 교사들이 모여 역사교육에 대한 자료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원이지만, 나머지 3명의 교사는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했다. ㄱ교사에 앞서 15분 가량 먼저 1인 시위에 나섰던 ㄴ교사는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ㄱ선생님이 하신다고 해서 우리도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역사 교사들이 주축이 됐지만, 국정화 반대에 공감하는 학생과 동료 교사들의 지지와 격려도 쏟아지고 있다.
경기 ㅂ고에선 2주 전부터 매일 아침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춰 6명의 역사 교사들이 교문 앞에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알리는 조촐한 ‘행사’를 열고 있다. 동료 교사들과 지지하는 학생들까지 많은 때는 15여명이 함께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든다고 했다. 정치적인 행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주저하던 교사들을 일깨운 것은 제자들이었다. 국정화가 논란이 된 이후에도 학생들에게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선생님은 국정화에 찬성하세요?” “왜 아무 말씀도 안하세요?”하고 묻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학교 ㄷ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면접을 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고, 토론을 좋아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더 먼저 판단을 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한 경기도 ㅅ고의 한 역사 교사는 “우리는 좌편향 교육을 하지 않는다, 자학사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전체 선생님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비조합원 선생님들이 답장을 보내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국정화 이슈에 대해서는 비조합원 선생님들도 호응을 많이 해주신다”고 했다.
역사 교사들이 1인 시위나 8종 검정 교과서 전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정화의 문제점을 알리는 활동에 나섰고, 여기에 학생과 동료 교사들이 호응하면서 예상치 못한 ‘역사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학생들이 교과서 발행체제부터 시작해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쟁점까지 새롭게 배워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육의 장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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