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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몽룡 교수의 제자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생이 4일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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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띵동. 3일 늦은 밤, 귀가길에 페이스북 알림 표시가 떴다. ‘최몽룡 교수 국정교과서 대표필진 참여 저지를 위한 동문 긴급모임’에서 보내온 초대 알림이었다. 1988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해 92년 졸업한 이후, 어제·오늘처럼 나의 출신과를 의식해본 적이 없다. 일찌감치 신문사에 입사해 전공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에, 친했던 사람 몇몇이나 페북으로 연결된 동문들의 근황을 대충 전해듣는 정도였다. 에스엔에스로 연결된 졸업생들이 알음알음 만든 모임이었다. 4일 오전 10시반, 국사편찬위원회의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정문. 페북 긴급모임에서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겠냐며 안타까워하던 두 명의 동문이 정문 양쪽에 엇갈린 채 각각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표 저자라니요? 최몽룡 교수님! 역사학자로서의 마지막 양심마저 버리지 마세요!’라는 피켓을 든 사람은 82학번 졸업생이었다. 고향에서 정착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양어장에서 일하면서 가끔 가족이 있는 안양에 올라온다는 그는 “선생 개인이 아니라 고고학도로서 쪽팔려 나왔다”고 말했다. 85학번 졸업생은 ‘국정교과서 반대! 최몽룡 교수님! 제자로서 당신이 정말 부끄럽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어제 저녁에 실시간검색어에 최몽룡이 떠서 뭔가 눌러봤다가 너무 놀랬다. 솔직히 얼마 전 서울대 교수들이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을 할 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과 교수들까지 이름을 올려 놀랍고 고마웠다. 그런데 그 뒤 역사학대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입했다고 하고 세상이 이게 뭔가 싶었는데, 우리 은사 이름이 나온다는데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십년 만에 취재현장에서 만나게 된 선배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땐 한번도 맘 편하게 살지를 못했다. 공부를 해도 학생운동을 해도 눈치가 보였다. 난 눈치만 보다 별볼일 없는 인생의 아줌마가 됐지만, 그래도 그런 시기가 있어 이제는 달라졌구나 하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로 시대가 돌아간다는 게 악몽 같다. 특히 억울한 건 젊은이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83학번 졸업생은 ‘1인시위를 할 용기는 없지만 격려하고 싶다’며 따뜻한 커피를 싸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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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몽룡 교수의 제자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생이 4일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진 구성과 개발일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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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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