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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위험한 질주
③ 경제성장 강조
“(현 역사교과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은 반노동자적으로 묘사하고, 기업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해서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한 이 발언은 갑자기 나온 발언이 아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경제단체가 오랫동안 ‘공’과 ‘돈’을 들여 개발해 온 대표적인 논리다. 이런 ‘경제성장·기업 중심’ 역사 서술 논리는 뉴라이트 진영의 <대안교과서 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와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이하 <교학사 교과서>) 등에 본격적으로 반영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박 대통령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이 내놓은 발언 등을 고려하면 2017년 발행될 국정 교과서에도 이런 논리가 상당 부분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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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상의 고교 국사 교과서 수정 건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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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교학사 교과서 이어
국정 교과서에 대폭 반영 가능성 “다른 나라 비해 크게 열악하진 않아”
산업화 과정 노동자 희생 축소 서술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이병철·정주영 일대기 ‘미화’
교학사 교과서 YH노조 쏙 빼 대한상의가 교육부에 제출한 건의안은 초·중·고 경제·사회·국사·한국 근현대사 4개 과목 60종의 교과서를 분석한 뒤 ‘편향된 시각’ 97건, ‘부정확한 서술’ 106건 등 무려 337건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교육부는 이를 수용해 같은 해 5월 “올해 국가·사회적 요구가 많아 교과서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대한상의의 수정안을 교과서 필자들이 검토하고 있으며, 6월 말이면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대한상의의 주장은 거의 같은 시기(3월24일) 발행된 <대안교과서>와 2013년 발행된 <교학사 교과서>로 그대로 이어진다. 대한상의 수정안 가운데 역사 관련 부분은 사회학을 전공한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분석했는데, 전 교수는 <대안교과서> 집필진이기도 하다. <대안교과서>에는 이병철·정주영 회장의 일대기가 별도 박스로 정리돼 있다. 서술 분량이 각각 전태일의 두배 이상이고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보다 많다. 이병철 삼성 회장에 대해서는 “경제발전의 기본 전략을 선구적으로 제시하였다”고, 정주영 현대 회장에 대해서는 “고도성장기 한국의 개척정신을 상징적으로 대표하였다”고 평가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는 전태일은 있는데 이병철·정주영은 없다”는 주장은 재계와 뉴라이트 진영 등이 검정교과서의 ‘반기업 성향’을 지적하며 내세우는 단골메뉴다. <대안교과서>는 경영인들 일반의 역할에 대해서도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한 데에는 정부의 역할이 컸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했다”, “기업가 능력을 보유한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 고 강조한다. 반면 노동자 관련 서술은 대폭 줄었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은 부정적인 역할이 강조되거나 아예 무시된다. <교학사 교과서>의 1920년대 노동자 계급 등장 시기에 관한 서술은 본문 5줄이 전부다. 1930년대 노동현실과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역시 5줄로 서술한다. 반면 1920~1930년대 자본가에 대해서는 곳곳에 반복적으로 소개한다. 예를 들어 초기 공업화의 한 사례인 고무신 공장 이야기는 세 번이나 등장한다. 하지만 나머지 7종의 검정 교과서에 다 있는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에 관한 설명은 아예 빠져있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에는 와이에이치(YH) 무역 노조 사건에 대한 서술이 없다. 다른 7종의 검정 교과서들이 이 사건에 대해 “유신을 종식시킨 10·26사건을 이끌어냈다”며 민주화의 역사를 다룰 때 빠트리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김민수 부산 사직고 역사 교사는 “노동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대한민국 절대다수인 (노동자) 국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며 “경영자와 정부를 따르는 역사 서술은 노동이 사회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지 않게 한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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