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부정묘사·10대 재벌 기술 등
원고본 ‘검토보고서’ 통해 처음 드러나
논란 우려해 현장검토본서 빠져
국편 등 대대적 수정 의혹 짙어져
“초고·1차 수정본 모두 파쇄”
김정배 위원장, 국회 조사서 밝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이 교과서에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서술까지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10대 재벌에 관련된 내용을 교과서에 넣으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 역사교과서 원고본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0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관계자와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관계자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편은 지난 5월 국정 교과서 집필진이 쓴 원고본을 검토한 뒤 ‘고등학교 <한국사>, 중학교 1·2 <역사> 검토보고서(내부)’를 작성했다. 이 내부 검토 보고서에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되었다는 주장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삭제 요망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집필진이 유신헌법을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로 미화한 데 대해 국편이 향후 ‘독재 미화’ 논란 가능성을 의식해 제동을 건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원고본-개고본(1차 수정본)-현장검토본(지난 28일 공개)-최종본 순서로 집필이 이뤄진다.
집필진은 또 ‘민주화 과정’에 대해서도 원고본에서 “기업 경영의 부담이 됐다. 공장의 해외 이전의 결과를 초래했다” 등의 부정적 서술로 일관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에 대해서도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도표로 그려 설명하며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했다. 친기업적 서술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교과서에는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와 이병철 삼성회장, 정주영 현대회장 등 3명만 기술돼 있었으나, 원고본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삼호, 개풍, 화신 등 10개 그룹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편은 집필진에 “해체된 그룹의 설명을 포기하라”고 검토의견을 냈다. 이들 내용들은 모두 검토 과정을 거쳐 최종 현장검토본에서는 빠졌다.
이에 대해 국편 관계자는 “‘유신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내용은 집필진이 유신헌법 중에 처음으로 헌법적 요소가 들어간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썼는데 (부적절해) 빼라는 취지로 검토의견을 냈고, 집필진도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빠진 내용”이라며 “나머지 내용들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없어지고 걸러진 것인데, 그런 부분을 발췌해서 지적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원고본은 최소 421쪽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공개된 현장검토본은 연표 등을 빼고 293쪽이다. 무려 120쪽이 넘는 내용이 검토과정에서 빠지면서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교과서를 국편 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수정했다는 ‘국정교과서 대필 의혹’([단독]“국편·교육부 직원 동원 국정교과서 수정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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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유은혜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30일 오전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질문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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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유은혜 위원장(오른쪽 둘째)이 30일 오전 현장조사를 나선 경기도 과천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맨 오른쪽)과 악수를 하고 있다. 과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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