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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한느 박근혜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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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주옥같은 말말말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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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한느 박근혜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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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검찰이 최근 ‘통일 대박 발언은 최순실의 빨간펜에서 나온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쯤되니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 국민들이 좀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었던 언어들도 최씨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박 대통령의 연설기록비서관이었던 조인근 한국증권금융 감사조차 ‘우주의 기운이라는 표현을 직접 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거든요. (
▶관련 기사 : 조인근, ‘우주의 기운’ 직접 썼나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꽤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 공개적인 발언 기회가 잦아지면서 ‘더’ 자주 논란이 될 뿐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박근혜 어록 아니 ‘최순실 어록’을 정리했습니다.
1. ‘사교’를 믿으니, 이제서야 이해되는 말말말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 2015년 5월 5일 청와대 ‘어린이날 꿈 나들이’ 행사
“(역사교과서)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 2015년 10월 22일 청와대 여야 지도부와 대통령 5자 회동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 2015년 11월 10일 청와대 국무회의
박 대통령이 ‘우주의 기운’을 처음 언급한 건 2015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이날 청와대 ‘어린이날 꿈 나들이’ 행사에 참석한 한 초등학교생이 ‘꿈이 대통령’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데 참으로 대견하다”며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여야 지도부 5인이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이 같은 화법은 다시 등장합니다.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엽합 원내대표가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이냐”고 질문하자,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습니다. 또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는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지적하며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지요. 현행 교과서로 배운 국민들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 같이 이해할 수 없었던 발언들은 최순실 씨의 ‘빨간펜’이 드러나며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는 1970년대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해 ‘영세교’를 만든 인물로, 우주의 기운이 이 종교와 연결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사과에서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은 ‘혼’, ‘우주의 기운’ 등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2. 말이 안되는 ‘주옥’ 같은 비유들
“
물 반 고기 반처럼 정책 반 홍보 반”
-2015년 11월 12일 청와대 사회보장위원회 회의
“
누에가 나비가 되어 힘차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라는 두꺼운 외투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하듯이”
-2015년 12월 23일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
“있는 규제를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하는 규제만 살려두도록”
-2016년 2월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
정부는 올해 3월 박 대통령 취임 3년을 기념해 비유집(
▶관련 기사 : ‘박근혜 비유집’은 최순실 비유집? 주옥같은 말 ‘새록’)을 내기도 할만큼, 각종 연설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정부는 이 책자에서 “박 대통령이 비유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대중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비유가 의미 전달을 해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2015년 11월 박 대통령은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물고기가 매우 많다는 뜻으로, 별 노력을 기울지 않더라도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인 셈입니다.
12월에는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누에가 나비가 되어 힘차게 날아가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를 힘들게 뚫고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표현입니다. 누에는 자라면 나비가 아닌 누에나방이 됩니다. 심지어 누에나방은 뚱뚱한 몸과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어 날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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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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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논란이 됐던 비유는 올 2월 무역투자진흥회의 발언입니다. “있는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살려내야 하는 규제만 살려두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부적절한 비유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청와대 참모진이 아닌 최순실이라는 비선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같은 실수도 잇따랐을 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3. 준비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대통령의 ‘빈약함’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2년 자서전 <아이 전여옥>을 출간하며 박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혹평한 바 있습니다. 전 전 의원은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며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지만, 거기가 끝이다. 어찌보면 ‘베이비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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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박근혜 대표의 비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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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박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답해야 할 때 가장 실수가 많습니다.
2007년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대선 후보 토론회를 벌이던 중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을 어떻게 줄여 나갈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준비를 잘 해서…배기가스 등이 조정이 될 수 있게”라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하던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를 배출하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로, 산소를 산소가스로 말한 것입니다. (
▶관련 기사 : “이산화탄소→이산화가스, 산소→산소가스”…알고보니, 박근혜는 토론 루저?)
“그런 점에서 5·16 유신,
민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당시 과거사 논란 사과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셔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역사적 지식의 빈약함을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2012년 대선 후보로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벌어진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사과하며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으로 잘못 말했습니다. 당시 누리꾼들은 ‘자신이 하는 말이나 인혁당 사건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저런 말실수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4. 힘들 때는 잠이 최고?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2016년 11월 4일 2차 대국민사과
“다른 좋은 약보다 사람한테는
잠이 최고인 것 같아요”
-2016년 11월 7~9일 종교계 인사들과의 만남
최순실씨도 구속되고, 박 대통령 옆에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진 뒤 우병우 민정수석등의 사표를 수리하고, 측근 3인방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도 교체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박 대통령은 최근 말실수로 더욱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2차 대국민 담화 때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해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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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4일 한겨레그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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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일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박 대통령이 한 말도 논란입니다. 박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하는 한 지도자의 말에 박 대통령은 “다른 좋은 약보다 사람한텐 잠이 최고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100만명의 시민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촛불을 밝히고 밤잠을 설쳐가며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홀로 ‘잘 자고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돼 더욱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이르면 15일 늦어도 16일에는 조사가 시작됩니다. 박 대통령은 모든 의혹에 대해 ‘나는 몰랐다. 좋은 취지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위기를 ‘어떤 말’로 벗어날까요. 정말 유능한 변호사를 찾으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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