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2 22:05
수정 : 2017.01.03 09:35
|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청와대 제공
|
박근혜 말씀자료 ‘삼성과 거래’ 의심
합병이 특혜 귀결된 사실 인지
삼성 후계승계 약한 고리로
금전적 지원 요구했을 가능성
박 ‘내 임기 중 승계 해결 희망’
정부 적극적 지원 메시지 보내
공정거래법 개정안 실제 추진
독대 뒤 정유라 220억 계약
미르재단 출연 등 이어져
합병 지원 대가성 의심 짙어
|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청와대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과 관련해 “손톱만큼도 누구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제 머릿속에는 아예 (그런 생각은) 없었다”며 개입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 7월 단독 면담할 때 청와대에서 만든 ‘대통령 말씀자료’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대목이고, 실제 독대 자리에서 이 말씀자료에 근거해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문건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서막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포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내용도 들어 있어 정권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2일 특검팀과 검찰, 재계 등의 얘기를 종합하면,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2015년 7월25일 독대할 때 사전에 작성된 ‘삼성그룹 관련 (대통령) 말씀자료’의 ‘최근 현안에 대한 당부’ 항목에는 삼성의 후계 승계 문제와 관련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배경이 무엇인지 설명한 부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4.1% 보유하고 있고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을 23.2% 갖고 있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라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삼성의 후계구도가 사실상 내부적으로 정리된 상태라는 언급까지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만날 때 준비한 이 자료에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 단순화’, ‘후계구도 내부 정리 완료’ 등의 단어들이 버젓이 담겨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주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는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 해명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명시적으로 삼성 후계 구도와 관련돼 있다고 문건에 거론된 만큼 당시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라는 특혜로 귀결된다는 점을 박 대통령이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이런 정황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최순실(구속기소)씨로 연결되는 제3자 뇌물죄의 범죄구성 논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삼성전자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단독 면담 이후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 명목으로 최씨 쪽에 220억원을 지원하는 계약서를 썼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구도에 필수적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측면 지원하고, 그 대가로 최씨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삼성그룹 관련 말씀자료’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시작으로 향후 산적해 있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정부가 큰 틀에서 뒤를 봐주겠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여럿 담긴 흔적을 주목하고 있다. 이 자료에는, ‘현행 법령상 정부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 승계 문제 해결을 희망’,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조속히 안정돼 미래를 위해 매진하기를 바람’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은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현 정부 집권 시기에 법적으로 도울 부분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배력을 확대해 승계 구도를 완성하려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외에도 정부가 챙겨줘야 할 부분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부회장의 승계 구도를 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장치 중에는 이른바 ‘중간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을 재편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한 곳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되려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한 현행 공정거래법 규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교롭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업무계획을 통해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지주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금융부문 규모가 클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검팀은 당시 공정위의 중간금융지주회사법 도입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와 삼성 쪽의 개입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