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박 대통령 자진 사퇴’ 시나리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박 대통령이 헌재의 ‘공정성’을 문제삼아 결정이 나기 전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 통해 지지층을 규합하고 검찰의 구속수사 등도 피하려 한다는 관측이지만, 실제 박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이익이 없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이용주 의원(국민의당)은 23일 <와이티엔>(YTN)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 쪽은 무조건 헌법재판의 틀을 깨서 헌재의 결정을 받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오는 27~28일 이후에 사퇴하고 곧바로 닥칠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에 논란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사임 뒤 이어질 조기 대선 국면에서 검찰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박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에 나서기 어렵고, ‘대통합’ 차원에서 박 대통령 사면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반대하는 쪽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박 대통령이 먼저 ‘용단’을 내린다는 명분도 내세울 수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의 ‘편파 진행’을 주장하며 강력 항의하고, 국회 탄핵소추 과정의 문제점까지 지적하고 나선 것은 ‘헌재 심판 불복→자진 사퇴’를 위한 자락깔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이 먼저 물러나 헌재에서 탄핵 결정이 나지 않으면 결국 양쪽의 주장만 남게 된다. 지지층을 결집해야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공식적인 결론을 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좀더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된다. 탄핵안이 인용돼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할 경우, 박 대통령은 경호를 제외하고는 연금, 비서관 지원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전혀 받을 수 없다. 실제로 박 대통령 쪽에선 10여명에 이르는 헌재 대리인단과 검찰 수사 변호사 비용 등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 쪽은 자진사퇴설에 대해 “현실성도 없고 실익도 없는 카드”라고 일축하고 있다. 결백을 주장하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탄핵 기각에 기대를 걸고 있는 데다, 자진사퇴하더라도 헌재가 탄핵 심판을 중단하고 각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권의 ‘사법적 면책’ 역시 가능성이 낮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대대표는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출연해 “박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갔을 때 사법처리를 막을 생각으로 (자진사퇴를) 제안하는 거라면 그거는 정말 택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사법 면책에 합의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자진 사퇴를 결정하기엔 위험부담이 큰 것이다. 박 대통령 쪽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잘 해결된다면 좋지만, 야당이 이를 받아주겠는가”라며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설에) 화가 많이 난 것으로 안다. 헌재 심판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 명확하다”고 잘라 말했다.
범여권에서조차 이런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그동안 탄핵에 반대해왔던 자유한국당은 다시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탄핵이 인용되는 상황만은 피해보자는 정치적 판단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최혜정 석진환 오승훈 기자 idun@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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