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1 15:52
수정 : 2017.05.1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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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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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날 직접 인사 발표
“앞으로도 국민들께 직접 말씀드릴 것” 약속
문답 없던 박근혜 정부 ‘불통’ 회견과 대비
누리꾼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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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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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유난히 바빴습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궐위선거인 만큼 선거일 다음날 바로 임기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하루 동안 현충원 참배-야 4당 지도부 면담-취임 선서식-황교안 국무총리와 오찬-기자회견까지 숨 가쁘게 움직였습니다.
짧고 간소했던 취임 선서식과 시민들과의 ‘스킨십’이 문 대통령의 ‘탈권위’를 보여준다면, 직접 첫 인사안을 발표한 기자회견은 ‘소통’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하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주영훈 청와대 경호실장을 임명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호명한 것이 아니라 ‘왜 이 사람을 뽑았는가’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선 “풍부한 정치적 경험·안정적 행정 경험·온화하고 합리적인 처신” 등을 이유로 들었고, 임 비서실장에 대해선 “젊은 비서실장 중심으로 격의 없이 대화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청와대로 바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문재인 대통령의 첫날…소탈, 소통, 탈권위
누리꾼들은 환호했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 안 됐던 지난 정부들 때문에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 같은 것에 뭉클하고 울컥했다”(@dearmagra****) “하루 만에 바뀐 것들, 대통령이 TV에 나옴, 대통령이 말을 함, 신임 각료들이 기자회견을 함, 대통령 지나갈 때 국민들이 뛰어다님. 또 뭐 있나”(@ByunBangA****)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 하는 데서 첫째로 어색하고 대통령이 말하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게 둘째로 어색하다”(@ipip****) “대통령이 그냥 기자회견을 하고 말을 하고 대화를 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만나고 악수하고 인사할 뿐인데 그게 신기하고 놀랍고 막 감동적이고 그렇다니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아닌가”(@donn****) “번역기 필요 없는 대통령. 기자회견이 귀에 쏙쏙. 그간 국민들 귀와 뇌가 고생이 많았더라”(@woody****) 등의 반응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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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부위원장에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임명했다.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1차 인수위 인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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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불통’이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첫 인사부터 ‘참사’였습니다. 2012년 12월2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인 비서실장에 유일호 의원(당시 새누리당)을, 수석대변인에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임명했습니다. ‘극우 논객’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창녀’ 등 자극적인 어휘를 남발한 부적격 인사라는 점 이외에 과정도 문제투성이였습니다. 이 인선안을 발표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박근혜 당선인이 (임명된 네 사람의) 이름만 알려줬고, 별다른 배경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변인 본인도 “너무너무 전광석화처럼 말해 저도 너무 당혹했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첫 인사였지만 누구도 그가 왜 발탁됐는지 알지 못했던 겁니다.
▶관련기사: 수석대변인도 내용 몰랐던 ‘박근혜 밀봉봉투’ 누가 작성했나
그렇게 발탁된 윤 대변인의 트레이드마크는 ‘밀봉인사’였습니다. 12월27일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원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른 그는 테이프로 밀봉된 서류봉투를 꺼내 들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진영 부위원장 등 총 14명의 이름과 직책, 간단한 인선 이유 등이 적힌 A4용지 3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서류를 그대로 또박또박 읽어내려간 그는 “당선인에게서 직접 받은 명단을 밀봉해 갖고 왔다. (발표하기 전까지 내용을) 저는 안 봤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선임 기준과 배경, 검증 등에 대해 윤 대변인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한겨레> 사설은 “(박근혜) 당선인은 보안만 중시했을 뿐, 주권자인 국민에게 인사 배경을 설명하고 공감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윤 대변인은 2013년 5월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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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관련 및 새로운 국가운용 방안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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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뒤 2년 동안 단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고, 임기를 다 따져봐도 다섯 차례에 불과합니다.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약 150회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기자회견조차 쓰인 원고만 읽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피하는 식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유레카] 대통령 기자회견
문 대통령의 새로운 소통 방식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표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2013년 1월7일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하는 국방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그 자리를 대신할 후보 척 헤이글과 존 브레넌을 자신의 좌우에 세웠습니다. 오바마는 30분 가까이 새 안보팀 인선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새로 지명할 후보들에 대해서는 각각 5분 안팎의 시간을 할애해 개인사와 업적 등을 통해 인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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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7일 백악관에서 차기 국방장관과 중앙정보국 국장에 각각 척 헤이글 전 네브라스카 상원의원(왼쪽)과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국토안보 보좌관(오른쪽)을 지명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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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헤이글이 베트남전 당시 장갑차를 타고 가던 동생이 지뢰 폭발로 피를 흘리며 빠져나오지 못하자 폭발 위험을 무릅쓰고 장갑차에 들어가 그를 구해낸 얘기를 꺼냈습니다. “헤이글은 전쟁이 추상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진흙탕 속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병장 헤이글이 그의 동생을 위해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장관 헤이글이 여러분을 위해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오바마는 30분간 인선배경 자세히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오늘처럼 국민들께 보고드릴 중요한 내용은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한 만큼, 확 달라진 청와대를 기대합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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