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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8 22:19 수정 : 2018.04.18 22:27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땅. 갯벌과 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해안의 마을이 보인다. 이병학 기자

서해와 한강 하구에서 열리는 한반도 평화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땅. 갯벌과 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해안의 마을이 보인다. 이병학 기자
■ ‘평화, 새로운 시작’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표어는 ‘평화, 새로운 시작’이다. 비핵화는 한반도의 평화 없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선 정전협정을 대신할 ‘한반도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고자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의 국제법적 의미는 “국제법상 전쟁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다. 전쟁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단지 군사적 교전행위만을 중지한 것”이다. 한반도는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위태로운 상태로 65년을 버텨온 셈이다. 이는 비단 남북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에게 평화는 북-미 간의 적대관계가 해소된 상태를 말한다.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렀고 세계 최강의 무력을 가진 미국이 바로 코앞에서 매년 세계 최대의 군사연습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이 일관되게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해가 된다. 이는 핵문제에 대한 논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반도 핵문제’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핵문제는 북-미 대결의 원인이 아니며 결과라는 것인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내지 말살 정책이 없었다면 북은 핵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북-미 적대관계에 맞서 자위적 억지력으로서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폐기 또는 북-미 적대관계의 해소로서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이 비핵화에 나오도록 하려면 북-미, 남북의 두가지 평화협정으로서의 한반도 평화체제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보면 북에 핵이 없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과연 한반도에 평화가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명백하다.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열 수는 있겠지만, 핵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한반도 평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비핵화보다도 평화가 강조돼야 하는 이유이다.

백령도 어선들에 태극기와 함께 평화 촛불을 상징하는 서해 5도 한반도기가 걸려 있다.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서해와 한강에서 시작하는 평화

그렇다면 우리는 그 평화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놀랍게도 ‘평창’이 그러했듯이, 평화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미 평화는 서해의 어민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서해5도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은 이달 초부터 평화의 촛불을 상징하는 ‘서해5도 한반도기’를 달고 출항하기 시작했다. 이는 평화가 생존의 절실함에서 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백령도선주협회는 4월6일 백령도 장촌포구에서 서해5도 한반도기 게양식을 열었다. 장태헌 백령도선주협회장은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서해5도 어민들이 어선에 서해와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한반도기를 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며 “앞으로 평화의 촛불을 더 높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5도 한반도기는 종전의 푸른색 한반도기에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등 서해5도를 추가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 이는 한달여 전인 3월8일 서해5도 주민과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서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촛불을 선언하면서 서해평화를 상징하는 이 깃발을 달기로 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서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 촛불선언은 ‘분단을 오래된 적폐’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오래된 적폐 중 하나인 분단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평화의 분기점에서 비정상적인 전쟁 체제를 바로잡는 평화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평화의 촛불은 서해 평화와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촛불이며, 더 나아가 전세계를 향한 평화주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반도가 전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국제적인 분쟁지역이라면 서해5도는 그 한반도의 화약고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지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그 절박한 현실을 이렇게 말했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등으로 서해5도는 남북, 남남 간 이념갈등과 분쟁의 상징이 됐고, 그로 인해 섬 주민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겐 말 그대로 평화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으니, 생존이 곧 평화요 평화가 곧 생존이다.

그래서 그들이 꾸는 꿈들은 실감이 난다. “서해5도 해상 파시에서 남북이 만나게 될 것”이며, “분단으로 이별하게 된 옹진군 남북 주민들이 옹진군의 이름으로 함께 만날 것”이라든가, “한강 하구를 통해 남북이 왕래하며 고려의 역사를 함께 연구하고 통일의 미래를 만들 것” 등이 그렇다.

교동도 인근 한강하구의 모습 배문 한강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대표 제공
■ 중립 평화의 섬 꿈꾸는 교동도

서해의 입구에서 한강과 만나는 섬 교동도도 평화의 섬이 되고자 한다. 교동도는 북한과의 거리가 2.6㎞에 불과한 접경지역이자 섬 전체가 민간인 통제지역이다. 2014년 강화도와 연결되는 교동대교 개통 이전까지 이곳은 오랜 시간 소외돼 ‘시간이 멈춘 섬’으로 불리었다.

이 교동도를 지키고 있는 주민인 우리누리평화운동의 김영애 대표는 4월13일 ‘교동 평화의 섬 포럼’을 열었다. 그는 교동도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말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낮은 단계의 중립 통일시범지역으로 교동도를 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섬의 특성과 청정 농경지를 지키며 살기를 원하는 주민들의 삶의 문화를 존중하는 중립 평화의 섬 말입니다. 분단에 가려져 있는 고대 역사 문화재를 복원하고 해주 개성으로의 뱃길 복원과 ‘평화대교’로 해주를 이어 유라시아로 소통하게 되면 통일시대를 열어갈 첨단연구단지도 가능하겠지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수석대표인 윌리엄 해리슨 미육군 중장(왼쪽 테이블 중앙)과 북한·중국 대표인 남일 북한군 대장(오른쪽 테이블 중앙)이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 1조 5항에 첨부된 지도. 한강하구 수역이 민간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자유항로인 것을 표시하고 있다. 점선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도 경계선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 한강 하구 중립수역의 민간선박 항행 계획

한강 하구의 김포 역시 ‘평화문화 1번지’를 내걸었다. 국토의 끝, 분단으로 인해 위험하고 접근을 못하는 금지구역이라는 접경도시의 굴레를 벗어나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 되겠다는 것이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은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한강 하구를 ‘군사분계선(MDL)이 없는 중립의 자유항행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북한의 민간 선박은 한강 하구를 자유 항행할 수 있고, 남이든 북이든 출항한 쪽이면 어디든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항행은 정전협정의 하부 실무규정으로 일정한 제약을 받게 된다. 1953년 10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가 채택한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해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은 이곳을 운항하는 민간 선박의 등록에 관한 부분을 통해 자유항행 자체를 제한했다. 그러나 이를 군정위가 자유항행의 허가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강 하구에 관한 상위 규정에 비춰 통행에 대한 규칙을 만든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한강 하구에서는 남북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계속됐고, 유엔군 쪽은 북쪽의 도발과 군사 충돌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또 북쪽은 실제 항해에 대한 요구가 없어 자유항행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돼 버렸다.

김포시는 정전협정의 규정과 항행규칙에 입각해 자유항행이 보장된 한강 하구 중립수역에서 민간 선박의 항행을 추진했다. 지난해 10월24일과 11월18일에는 한강 하구 물길 탐사, 유도의 현황 조사 등을 위해 선박 4척의 항행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은 건 우리 국방부였다. 국방부는 답변에서 “지금은 남북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15년에도 그랬다. 이제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남북이 함께 한강 하구에 배를 띄워 평화를 만들어갈 때다.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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