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장대 사열은 우호와 위협 두가지 성격
‘받들어 총’ 자세는 ‘충성’ 아닌 비적대 표시
2000년 6월13일 오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나와 직접 일행을 영접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군 명예위병대장 차민헌 대좌가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군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2007년 10월2일 평양시 모란봉 구역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북한군 명예위병대를 함께 사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군 의장대를 사열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군을 사열했고 상호주의에 입각해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10월2일 평양시 모란봉 구역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북한군 명예위병대를 함께 사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국군 장병들을 사열하는 게 적절한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지적이 타당할 것일까? 먼저 많은 나라들이 외국 손님에게 군 의장대 사열은 왜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군 의장대 사열에는 ‘우호와 위협’이란 두 측면이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국의 사신을 죽인 일로 전쟁이 터진 일이 종종 있었다. 북방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 거란이 고려 태조에게 사절단 30명과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태조는 거란 사절단 30명을 모두 귀양보내고 낙타 50마리는 송도 다리밑에 매어놓아 굶어죽게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거란과 고려는 단교했고 거란이 3차례 고려를 침략했다.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의 왕이 페르시아의 사신을 발로 차 깊은 우물에 밀어넣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적대국의 사신을 죽인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꽤 오래 전에는 적장이 아군을 방문할 경우 적장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거꾸로 적장 처지에서는 적대국을 찾으려면 자신의 목숨부터 걸어야 했다. 적대국 사이에서 죽고 죽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의 사신이나 우두머리가 상대국을 방문하려면 신변 안전에 대한 보장장치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적장이 방문했을 때 아군을 도열시켜 적장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장대 사열을 시작했다. 의장대 사열은 상대의 신변 안전을 공식 보장하겠다는 의식이었다. 현대에서는 군 의장대가 ‘받들어 총’ 자세로 예를 표한다. 이 자세는 의장대 군인이 소지한 총의 방아쇠를 상대방 쪽으로 돌려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상대를 사격할 할 뜻이 없다는 비적대 의사를 명백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의장 행사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적장에게 ‘앞으로 선린 우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칫하면 우리 군대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은근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 국가 차원 의장 행사의 기원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외국 손님을 상대로한 의장 행사에서 군인들이 강인하고 패기있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자국의 힘을 은근하게 과시한다.
우호와 위협이 섞여 있는 군 의장대 사열의 성격을 감안하면, 국군 의장대 사열을 북한군 최고사령관에게 우리 군이 ‘충성과 복종’을 표하는 행사로 볼 일은 아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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