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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6 16:58 수정 : 2018.04.27 00:08

1953년 7월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중국·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의 한글본(왼쪽)은 65년 동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2018년 4월27일 한반도 평화의 새 시대로 나아갈 ‘판문점 선언’을 기다린다.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27일 정상회담

판문점은 적대와 갈등·충돌의 상징
북을 폐쇄국가, 남을 섬나라로 만들어

‘정전 65년’ 두 정상의 협상과 담판
이해타산 넘어 환상의 호흡이 필수인
탱고 춤처럼 아름답길 7500만이 바라

1953년 7월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중국·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의 한글본(왼쪽)은 65년 동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2018년 4월27일 한반도 평화의 새 시대로 나아갈 ‘판문점 선언’을 기다린다. 사진 눈빛출판사 제공
판문점은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다리여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전’이라는 이름의 저강도 전쟁은 남과 북의 7500만 시민(인민)의 삶을 쉼없이 옥좼다. 판문점은 적대와 갈등과 충돌의 상징이었다. 정전 65년의 세월은, 북을 폐쇄국가로, 남은 섬나라로 만들어버렸다.

그 판문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27일 만나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다리를 놓으려 한다. 공동 번영이라는 미지의 땅으로 이어질. 두 정상의 협상과 담판이, 건조한 이해 타산을 넘어 환상의 호흡과 열정이 필수인 탱고 춤처럼 아름답기를, 한반도의 7500만 시민(인민)은 간절히 바란다.

판문점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역사가 우리의 바람이 아니었듯이, 판문점도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전쟁 이전 그곳에 살던 이들은 스스로를 ‘널문리 사람’이라 불렀다. 사천강에 널빤지 다리가 있어 그랬다는 이도 있고, 임금이 강을 건너려는데 다리가 없어 마을 사람이 대문을 뜯어 다리를 놓아 널문리라 했다는 이도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널문리라는 이름은 ’다리’에서 유래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판문점은 남북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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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서로 다른 두 세상을 잇는다. 다리를 건너 만나면, 겪어보지 않고 의심하거나 미워하던 마음이 햇볕을 받은 새벽안개처럼 흔적없이 사라진다. 하여, 다리는 소통이다. 다리는 평화와 공동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7일 회담 도중 판문점 습지 위 군사분계선 표식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친교산책을 하기로 했다는 발표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널문리도 소통의 다리였다. 조선시대 명·청의 사신단이 한양에 갈 때 발품을 쉬던 곳이 널문리다. 한양과 의주를 잇는 길에 삶을 건 이땅의 숱한 이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의탁한 곳이다. 널문리 사람들은 나그네한테 밥과 술과, 잠자리를 내줬다. 그렇게 널문리는 주막마을이 됐다. 위로와 안식을 주는.

그 널문리 주막 앞 콩밭에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22일 강대국의 협상 천막이 들어선 건, 역사의 무자비한 역설이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국제연합군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이 타결될 때까지, 널문리 주막마을은 냉전 초기 패권 다툼의 진열장이었다. 대한민국은 협상의 주체가 아니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외치며 정전에 반대한 탓이다. 협정이 타결되고도 12시간 동안 총·포성은 멎지 않았다. 남과 북의 젊은 병사들이 부질없는 고지 점령전에 내몰려 제목숨을 버리며 동족의 가슴에 총질을 해야 했다. 1953년 7월27일 밤 10시 총·포성이 멎었을 때, 여름 바람이 밀어낸 화약냄새의 자리를 풀벌레 울음이 채웠다. 그러나 이땅 사람들의 삶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 정전협상 도중 중국인들은 ‘널문리 가게(주막)’를 ‘판문점’이라 한자식으로 불렀다. 그렇게 적대와 갈등과 충돌의 공간 판문점이 탄생했고, 소통과 평화의 널문리는 사라졌다.

26일 오전 남북정상회담 시작을 하루 앞두고 경기도 고양 킨텍스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 국내외 주요언론사들이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여,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강대국 정치에 놀아나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한민족의 주체적 역사 복원 노력이다. 정전체제의 공식 주체가 되지 못한 대한민국으로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나갈 여정의 당당한 주체임을 세계에 선포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판문점(정전체제)을 널문리(평화체제)로 되돌리려는 문 대통령의 행보에 처음부터 주목한 이는 드물다. 2017년 7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며 ‘대한민국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종합 정리해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며, △북한 붕괴·흡수통일 배제 △북 체제 안전 보장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을 제시했다.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해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을 실천 과제로 삼고는,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촛불광장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지 채 두 달도 안 됐을 때다. 하지만 주목은 커녕 ‘김정은의 핵위협 앞에 대화를 구걸하는 유약한 지도자’라는 조롱과 멸시가 쏟아졌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실험(발사)과 맞물린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공포” 따위 막말싸움 속에 한반도는 유례없는 전쟁 위기로 빨려들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9월21일(현지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의 위기 앞에서 평창이 평화의 빛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며 “유엔이 촛불이 돼 주기를, 평화와 동행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 주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전쟁 위기의 와중에 문 대통령은 정세 반전의 중요한 밑돌을 놓았다. 강경화 외교장관으로 하여금 10월30일 국회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3불(不)’ 정책, 곧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엠디(MD·미사일방어)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하도록 했다. 핵심은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한-중 관계를 뒤흔들던 사드 갈등을 ‘봉합’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격화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전선을 흐트러뜨렸다. 그만큼 한국의 외교 공간이 넓어졌다.

11월13일 유엔 총회는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올림픽 개막 1주일 전인 2월2일부터 패럴림픽 폐막 1주일 뒤인 3월25일까지 52일간 유엔 회원국은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하고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의 위업이 실현됐다”고 선포했다. 한반도는 전쟁 위기로 내몰리고 평창올림픽은 망했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고 했던가. 북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은 어둠의 끝,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래 10년간 적대와 갈등으로 치달아온 한반도 정세의 극적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2월19일 겨울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으로 가는 대통령 전용열차에서 미국 <엔비시>(NBC)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의 연기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미국에 이를 제안했고, 미국은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전쟁책동’이라 두려워하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내려는, ‘평창’을 평화를 불러올 다각적 정상외교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포석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과 사전 합의 없이 ‘지른’ 것이다. 위험천만한 모험은 모든 것을 바꿔놓은 ‘신의 한 수’가 돼 ‘평창 (임시) 평화체제’의 문을 활짝 열었다. “흘러가는 정세에 운명을 맡기지 않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의지와 노력이 상황을 반전시켰다”는 문 대통령의 회고(4월19일 언론사 사장단 초청 청와대 오찬)는 허언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이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드디어 평화로 갈 대화의 문이 열렸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인근에서 한반도기 뒤로 육군 장병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뒤는 꿈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남북고위급회담, 북 평창 참가 합의(1월9일)→김여정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쪽 대표단 방남, 문 대통령 예방(2월9~11일)→서훈·정의용 특사단 방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3월5~6일)→트럼프 대통령, 정의용 특사 접견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향’ 발표(3월9일)….

‘평창 (임시) 평화체제’의 형성엔 70년 한반도 분단이 만들어온 익숙한 경로를 벗어난 선택이 여럿 작용했다. 그래서 기회와 위험 요인을 함께 지닌 양날의 칼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 연기·축소를 일방적으로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한미동맹을 신의 섭리로 여겨온 양국의 동맹론자들을 자지러지게 했다. 김 위원장은 서훈·정의용 특사단을 만나 ‘한미 연합훈련 진행을 이해한다’고 해, 후견국 중국을 놀래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특사를 만나 즉석에서 김 위원장과 회담 의사를 밝혀 참모와 전략가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남·북-미의 세 최고지도자의 이런 선택은, 새길을 여는 파천황적 선택이 될 수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 전략지형과 기득권세력의 힘에 밀려 거센 역풍의 빌미가 될 위험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어떻게 해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북한을 품을까? 김 위원장은 미-중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풀어야 할 질문이 많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감당해야 할 역사의 짐은 전례없이 무겁다.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다리를 놔야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한반도에 사는 7500만 시민(인민)은 마침내 평화의 땅에 발을 대디딜 수 있을 터이다.

그러니 분단과 전쟁의 비참한 역사에 스러져간 숱한 원혼들과 손을 맞잡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다함께 외쳐보자. 1966년 이탈리아 월드컵(북 8강 진출)과 2002년 한-일 월드컵(남 4강 진출) 때 그랬던 것처럼. “꿈은 이루어진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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