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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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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흥남철수 피란민 출신
2004년 어머니·이모 상봉 직접 지켜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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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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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딸·9살 아들 두고 배에 오른 부모
그 이름 부르고 또 부르다 세상 떠나
“북한의 형·누나 만나 한 풀었으면”
‘김치 넘버 5’ 이경필씨
아버지 전쟁없이 살고 싶단 말씀에
가축병원 문 열며 ‘평화가축병원’ 간판
“부모 고향에 갈 날 하루빨리 오기를”
“죽기 전에 함경도에 있는 부모님 고향 땅을 밟고 북한에 남겨진 형 누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북한과 왕래하며 사는 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모두의 소망일 겁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25일, 성탄절을 맞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에는 이틀 전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미국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통이었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배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배에서 첫 번째, 다섯 번째로 태어난 실향민 손양영(68)·이경필(68)씨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이들이 태어난 빅토리호를 함께 타고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가 여동생을 만나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다섯 아기 중 첫 번째로 태어나 ‘김치 넘버 원’으로 불린 손씨도 “북한에 두고 온 형과 누나를 꼭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을 풀고 싶다”고 소망했다. 흥남철수 당시 손씨의 부모에게는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이 있었다. 손씨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손씨의 형과 누나에게 “큰삼촌과 며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빅토리호에 올랐다. 금방 전쟁이 끝나 자녀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손씨의 부모는 60년 동안 북에 두고 온 자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웠던 손씨의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영옥아’라고 하셨어요. 북한에 두고 온 누나 이름이 손영옥입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는 제 아내한테 ‘영옥아, 영옥아’ 하셨고요.”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손씨의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어머니는 ‘곧 고향에 가서 자식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어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네요.”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던 손씨는 ‘평화’를 구체적인 공기로 느꼈다고 한다. “김여정과 김영남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했어요. ‘곧 형과 누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빅토리호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치 넘버 파이브’ 이씨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온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고 했다. 이제 ‘수의사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씨는 1975년 처음 문을 연 동물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동물병원 이름에 ‘평화’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도 자영업을 했는데 ‘평화사진관’, ‘평화상회’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그의 아버지는 10여년 전 세상을 뜨면서 “묘비에 함경남도 흥남시 고향 주소를 적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후손 중 누군가가 대신 고향 땅을 밟아줬으면 하고 바라셨어요. 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온화한 그의 말투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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