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취재사진단
솔직·대담한 스타일 과시
만찬 오를 평양냉면 소개하다
표현 서둘러 거둬들이며 웃음
“문 대통령 새벽잠 설치지 않게”
도발 않겠단 뜻도 유머로 강조
‘탈북자’ ‘연평도 포격’도 직접 언급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하실 것”
낙후한 북 사정 스스럼없이 드러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취재사진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벤트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솔직하고 대담했다. 60억 세계인들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긴장되는’ 무대였지만 김 위원장은 어색함 없이 농담을 던졌고 북한의 낙후한 상황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는 ‘은둔의 독재자’라는 기존의 평가를 가볍게 넘어서며 파격적이면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세계에 과시했다.
■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여유와 유머 김 위원장은 27일 아침 판문점 북쪽 지역인 판문각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평화의집 환담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침 일찍 출발했을 것이라 언급하며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엔에스시(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습니다”라며 웃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14일 오전 5시27분께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 12형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11월29일 오전 3시17분께 아이시비엠(ICBM)급 추정 탄도미사일 발사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 실험을 했다. 북이 새벽 3~6시 사이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 대통령은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온 일을 언급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습니다”라며 더 이상의 도발은 없다는 점을 농담을 섞어 강조했다.
회담장 입구에 걸린 금강산 그림 앞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자 김 위원장은 “악수만 가지고 박수를 받으니까 쑥스럽네요”라며 웃었고, 사진 촬영이 끝난 뒤에는 “잘 연출됐습니까”라며 여유 있는 농담을 건넸다. 그는 옥류관 냉면 등 정상회담 만찬 메뉴가 화제에 오른 점도 직접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오기 전에 보니까 오늘 저녁 만찬 음식 많이 얘기하던데,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지고 왔는데,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멀리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옥류관 평양냉면은 문 대통령이 만찬 음식으로 북쪽에 제안한 것이다. ‘원조’의 맛을 내기 위해 평양 옥류관 수석주방장이 통일각에 제면기를 설치해 이날 즉석에서 면을 뽑았다.
문 대통령은 또 “제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말했다.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마술공연을 관람하며 함게 웃고 있다. 문 대통령 손에 마술에 쓰인 지폐가 들려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지금 넘어가볼까요”…파격과 솔직함 김 위원장의 파격 행보는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겠다는 ‘결단’을 내렸을 때부터 예견된 바 있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리게 된 것은 김 위원장의 결정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판문점 북쪽 지역인 판문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군사정전위원회 티(T)2와 티3 사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기다리던 문재인 대통령과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악수했다. 김 위원장은 높이 5㎝의 군사분계선 턱을 넘어 남쪽 땅을 밟았다. 남과 북을 향해 각각 사진 촬영을 마친 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이렇게)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화답한 뒤 문 대통령을 다시 북쪽으로 이끌었다. 두 정상은 손을 맞잡고 북쪽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에서 다시 한번 악수를 했다. 문 대통령의 ‘깜짝 월경’이었다. 전통의장대를 사열한 뒤 문 대통령이 “오늘 보여준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로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하자, 그는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즉석에서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사전 환담에서도 “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라며 남북관계에 있어 ‘불편한 진실’도 거침없이 언급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정상회담에서 “남쪽의 국정원과 통일부는 왜 자꾸 탈북자를 끌어들이냐. 여기서 도망친 범죄자들을 감싸고돌면서 선전에 이용하고 비방 중상하고…”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1953년 정전협정 뒤 북한의 가장 강도 높은 도발 가운데 하나였던 ‘연평도 포격’을 직접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낙후된 상황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그는 평화의집 사전환담장에서 문 대통령이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을 가고 싶다”고 하자,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했습니다. 남측의 이런 환영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오전 회담을 마무리하면서도 “우리 도로라는 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불편하다”며 “고저 비행기로 오시면 제일 편안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함께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상회담 뒤 북쪽의 최고 지도자가 전세계 앞에 서서 공동발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대담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준 김정은 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영상] 오전 회의 마친 김정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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