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9 19:44
수정 : 2018.04.2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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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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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장 5월 공개 폐쇄”
한·미 전문가·언론인 풍계리 초청
판문점 선언 3조4항 즉각 실천
진정성 강조로 ‘믿어달라’ 호소
트럼프와 담판 위한 다목적 포석
청와대 “북핵 검증 적극 수용 의지”
문정인 특보 “핵 폐기 투명화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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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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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판문점 정상회담 때 ‘5월 중 북부(풍계리)핵시험장 폐쇄(폐기) 실행+한국·미국 전문가·언론인 초청’ 방침을 밝힌 것은, 앞으로 미국 등과 협상을 거쳐 이뤄질 비핵화 실천을 ‘높은 투명성’ 기준에 부합하게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강조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는 다목적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앞으로 투명성을 높여가겠다”는 선언이다.
첫째, 김 위원장은 이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공표할 수 있게 해, 앞으로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입지를 높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했다”는 판문점 선언(3조4항)의 즉각적 실천이다. 둘째, 김 위원장은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 전문가와 언론의 시선을 의식해 ‘투명한 비핵화 과정’을 강조하며 ‘나를 믿어달라’고 호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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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9일 “앞으로 논의될 북핵 검증 과정에서 선제적·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거쳐 이뤄지리라 예상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 폐기 과정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는 시사”라고 짚었다.
사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공화국 북부핵시험장 폐기” 방침을 결정·발표했다. 이번에 새로 밝힌 내용은 △5월 중 폐쇄 △한·미 전문가·언론인 초청이다. 우선, ‘5월 중 폐쇄’는 5월 안에 열릴 것으로 알려진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비핵화 실천의 실물’을 국제사회에 내놓겠다는 뜻이다. 이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결정한 뒤 백악관 참모의 반대는 물론 미국의 전략가·언론한테서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입지를 높이려는 ‘배려’의 측면도 있다. ‘한·미 전문가·언론인 초청’은, 북쪽이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전원회의 결정에서) 취한 선택이다. 정식 사찰·검증은 아니어도 미국의 전문가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김 위원장이 ‘우리를 핵 보유로 밀어붙인 적대관계의 당사자’라 지목해온 미국 외에 한국의 전문가·언론인도 초청한 사실이다. “남과 북은…한반도 비핵화를 위해…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는 판문점 선언의 문구(3조4항)가 내용 없는 수사가 아닐 것임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문구와 관련해 정상회담 논의에 밝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비핵화 ‘책임’을 다하고, 문 대통령은 북쪽이 바라는 ‘체제안전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협력·지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남북 두 정상의 파트너십 선언”이라고 짚었다. 실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부(풍계리)핵시험장 폐쇄 실행 시기와 이를 현장에서 살필 한·미 전문가·언론인을 누구로 할지 등을 “남과 북이 협의해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8년 6월27일 북한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때 한국의 정부 당국자와 언론인이 현장에 간 적이 있지만, 6자회담 당사국 자격이어서 이번과는 그 형식과 내용이 사뭇 다르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는 김 위원장의 ‘선의’와 일방적 조처만으론 현실화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한테 “왜 우리가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반문하며 그 앞에 붙인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이라는 조건문을 잘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이미 상당 수준의 상호 신뢰와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공동 인식이 형성된 거 같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통해 ‘꼭 받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절차·방법·시기와 관련해 복잡하고 민감한 쟁점이 많아 북-미 사이에 긴 얘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의 ‘과거핵’(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과 ‘현재핵’(핵시설 등)을 어떻게 폐쇄할지, 그 과정을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보장 등 북-미 관계 정상화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 경제 재건 협력프로그램 마련·실행 등과 정교하게 짜맞추는 건 한두마디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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