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0 13:21
수정 : 2018.08.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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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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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3시 금강산 호텔서 21차 이산가족상봉 열려
남쪽 방문단 태운 버스 12시55분께 금강산 호텔 도착
온정각서 점심식사 뒤 대망의 단체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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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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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다. 1차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20일 오전 8시35분께 속초에서 금강산으로 출발한 남쪽 방문단은 이날 오후 12시55분께 금강산 호텔에 도착했고, 온정각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께 헤어진 가족의 얼굴을 본다. 65년여만이다. 첫 단체상봉이 열리기 전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미리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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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개성공단서 만난 그 일꾼이 내 친조카였을까?
김종태(81)씨는 20일 금강산에서 북쪽에 사는 형수 정공주(81)씨와 조카 김학수(56)씨를 만난다. 한국전쟁 당시 9남매 중 홀로 북쪽에 남은 큰 형 영태씨의 배우자와 아들이다. 이 여정에는 김씨의 동생인 종삼(79)씨가 동행한다. 이들에게는 이번 상봉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동생 종삼씨는 이번 행사에서 형 종태씨가 받은 생사확인 회보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조카’라는 사람의 이름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종삼씨는 6∼7년 전 개성공단에서 일할 적 북쪽 인부 15명을 데리고 목수로 일했다. 그 가운데 50살 정도 된 김학수씨가 있었다. 종삼씨는 그에게 양말, 콘크리트 못을 챙겨주곤 했다. 이번에 생사확인 회보서를 보니 조카라 적힌 란에 나이가 56살인 김학수씨가 있었다. 개성공단에는 파주 인근 북쪽에서 오는 인부들이 많다는 게 종삼씨 얘기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혹시 6∼7년 전 개성공단서 만난 ‘김학수’씨가 북쪽 큰 형의 아들, 종태씨와 종삼씨의 조카 김학수씨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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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남측 이산가족상봉단을 태운 버스가 강원 고성군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금강산으로 향하고 있다. 2년 10개월 만에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은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뉴스통신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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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야 고생 많이 했지?”…헤어진 남매들 다시 만난다
이날 금강산에서는 한국전쟁 때문에 헤어진 4남매도 다시 만난다. “‘춘자야, 어머니 아버지 다 보내고 어떻게 살았어. 고생 많이 했지’하며 울 것 같습니다.” 큰오빠 김춘식(80)씨는 20일 북쪽에 사는 두 여동생을 만난다. 한국전쟁 당시 10살이 채 되지 않았던 어린 두 자매 춘실(77)씨와 춘녀(71)씨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됐다.
김춘식씨를 비롯한 4남매와 부모님은 전쟁이 나기 전 황해도 옹진에 살았다. 김씨 설명을 들어보면 이 지역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접전을 벌여 한 달에도 두번식 인공기, 태극기가 번갈아 나부꼈다고 한다. 김씨는 인민군을 피해 몇차례 피난을 갔다 돌아가곤 했다. ‘이번에도 한 달 이면 인민군이 나가겠지’하며 나온 피난이 마지막이 됐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김씨 부모는 김춘식씨와 바로 밑 남동생만 데리고 피난을 떠났다. 여동생 둘은 고향 조부모댁에 남겨뒀다. “조그만 애들은 잡아가지 않으니까….” 조부모는 피난 간 가족도 곧 돌아올테니 평생 일군 터전을 잃지 않으려 고향에 남았다.
이번에 큰 형 김춘식씨와 함께 가는 김춘영(64)씨는 월남한 뒤 인천에서 태어나 북쪽 누나들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부모님이 피난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도 누나들, 고향 얘기를 안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못 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남매들의 어머니는 피난 직후부터 심장병을 앓다 1980년대에 65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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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고성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함성찬(99) 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함동찬(79) 할아버지를 보고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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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때 북쪽에 남겨둔 두 살 배기 아들…“‘너도 술 좋아하냐’ 물어야지”
이기순(91)씨는 20일 북쪽에 사는 아들 리강선(75)씨와 손녀 리순금(38)씨를 만난다. 이씨는 1951년 1·4후퇴 때 두 살 배기 아들을 비롯한 가족을 모두 북에 남기고 월남했다. 유일하게 동행한 형은 월남 도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아들의 얼굴이 아득하기만 하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모르지. 내 아들이 맞다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하나만 물으면 알 수 있어.” 이씨는 아들한테 어디서 살았는지만 물어보면 진짜 내 아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짜 아들이 맞다면 “너도 술 좋아하냐”고 물어볼 작정이다. 이씨가 하루에 소주 반 병을 반주로 먹을만큼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자식을 떼어놓고 월남한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 이씨 눈에 물이 고였다.
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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