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프레임 없이 비닐로만 비닐하우스 지어라?
타미플루 대북지원 하되, 싣고 갈 트럭은 안 된다?
인도적 대북지원도 각종 제재 겹겹
긴급 구호품 전달도 사실상 불가능
“인도적 대북지원 일괄 제재 면제를”
영국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사업가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큰돈을 빌렸다. 안토니오는 돈을 못 갚으면 자신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을 주기로 약속했다. 갑자기 파산한 안토니오는 빚을 갚을 수 없었지만 재판관이 ‘살을 잘라내되 피를 흘리게 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최근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규제가 ‘샤일록 판결’과 다름없다는 문제제기가 대북지원 민간단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대북제재를 면제한다는 원칙을 밝혔고, 최근 유엔이 국제적십자 등 국제 구호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대북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이를 두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유화 메시지를 보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도적 대북지원 현장의 분위기는 이와 전혀 다르다. 6일 대북지원 단체들의 말을 들어보면, 엄격한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 어린이, 주민을 위한 긴급구호 물품 전달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대북지원 민간단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북쪽 산림녹화사업은 ‘비상업적인 공공 인프라사업’으로 분류돼 대북제재 예외 조건에 해당한다. 북쪽 산림녹화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묘목을 키우는 양묘장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비닐하우스를 세우려면 비닐과 철제 프레임이 같이 북쪽에 들어가야 하는데 철제는 제재 품목이라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비닐만 제공하면 비닐하우스를 못 만든다”고 말했다. ‘피 없이 살만 도려내라’는 샤일록 판결이 독자에게 통쾌함을 주지만, 철제 프레임 없이 비닐로만 비닐하우스를 지으라는 식의 대북제재는 대북지원을 가로막고 있다.
겨울을 맞아 북한 내 인플루엔자(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타미플루 대북지원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21일 한-미 워킹그룹은 대북 인도적 지원 협력에 공감했고, 정부는 타미플루 20만명분과 민간단체가 기부한 독감 신속진단키트 5만개를 북쪽에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6일까지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9년 남북관계가 나빴을 때도 타미플루 대북지원이 이뤄졌는데 남북 대화가 활발한 요즘 타미플루 지원이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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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는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분무기 없는 농약’ ‘바늘 없는 주사기’ 같은 손팻말을 들고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민간단체가 소속 국가 정부로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 차원의 허가를 얻은 경우에는 일괄적인 제재면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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