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3 20:23
수정 : 2011.04.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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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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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20주기를 맞은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환경문제에 일찍부터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그는 대학원에 복학해 ‘공해소송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입증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환경법이 아직 법조계에 자리잡기 전의 일이다. 조 변호사는 이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열어 삼표연탄 탄가루 공해에 시달리던 서울 상봉동 주민들의 환경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소송에서 그는 5공 헌법의 장식물이던 환경권 조항을 구체적 시민의 권리로 이끌어내는 선구적 기여를 했다.
1990년대 이후 조영래의 후예들은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이 설치한 법률센터나 활동가로서 대규모 국책사업의 환경파괴를 막는 데 활약하게 된다. 새만금 소송에서는 2003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방조제 공사를 잠정 중단하라는 집행정지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또 우이령 사람들은 양양 양수발전소 건설 중단을 위한 소송을 통해 소송 자격이 있는 주민의 범위를 환경영향평가 대상 지역으로 크게 넓히는 대법원 판결을 얻어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조사업으로 불리는 4대강 사업을 멈추기 위해 지난해 4대강 국민소송단이 출범했다. 그리고 서울에 이어 지난 10일 부산에서 패소 판결이 나왔다.
낙동강 소송은 4대강 소송의 분수령이다. 낙동강에는 댐 규모의 대형 보 8개가 들어서는데다 강바닥을 파내는 준설량만 해도 다른 세 강의 물량을 모두 합친 것의 3배가 넘는 4억㎥에 이른다. 보 설치로 인한 농경지 침수, 유해폐기물 매립, 문화재 발굴 소홀 등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달 동안의 심리 끝에 정부 쪽 손을 들어줬다. 시민단체들은 사업현장을 둘러보고 원고 쪽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진지한 자세를 보이던 재판부에 기대를 걸었기에 실망도 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업 시행의 계속 여부, 그 범위를 판단하는 문제는 사법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주제”라고 했다. 사법부는 사업이 옳은지가 아니라 법에 어긋나는지만 따진다는 얘기다. 22조원이나 들여 국토를 송두리째 바꿔놓으면서 예비타당성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 법 조항에만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인지, 일반인의 법감정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재판부는 또 “설령 사업 시행의 적절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및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이 사법의 영역에서 일도양단식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도 했다. 민변의 지적대로 이는 “사법부의 책임 회피”일 뿐이다.
4대강에 관한 한 민주주의는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다. 행정부는 오로지 공기에 맞추기 위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고 입법부는 날치기로 예산과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번 판결로 제도권에서 4대강 논의를 할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지난달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낙동강 소송 마지막 심리가 열렸다. 국민소송단인 원고 쪽 변호인이 미리 준비한 에세이 형식의 최종변론서를 읽어나갔다. 정남순 변호사가 감정이 북받쳐 읽기를 중단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뒤,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인간은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어느 인디언의 말을 인용했을 때였다. 방청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변호인들은 “두렵다”고 했다. 4대강 사업의 규모와 행정 관료들의 무모함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어리석음의 대가가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마치 한달 뒤 판결을 예견하듯이 “4대강 사업을 소송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4대강 소송은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겠다는 우리 안의 이기심에 대한 도전”이고 “인간의 오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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