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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에 출석한 유영하 변호사(앞줄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이경재 변호사, 최순실씨.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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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 [토요판] 법정 다큐, 수인번호 503
① 최순실 대신 유영하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이 5월23일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조금씩 잊혀가고 있습니다. 국회의 국정조사, 검찰 수사,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거치며 새로울 이야기도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일주일에 여러 차례, 몇시간씩 열리는 재판은 역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피고인 박근혜’는 재판을 받아야 하고, 판사는 판단을 해야 하며, 기자는 성실한 기록자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법정 다큐 형식의 연재로 박 전 대통령 재판 기록을 남기는 이유입니다.
“지금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진행할 사건은 2017고합364호 피고인 박근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신동빈에 대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뇌물 등 사건입니다. 피고인들 모두 나와서 자리에 앉기를 바랍니다.”
5월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초 지나지 않아 남색 재킷을 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타났다. 서울구치소에서 샀다고 알려진 2380원어치의 집게 핀으로 올림머리도 했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과 가슴에 달린 수인번호 ‘503’ 배지가 ‘구속 피고인 박근혜’의 신분을 알렸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은 형사대법정에 들어선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거쳐 간 피고인석에 앉았다. 배경과 신분만 바뀌었을 뿐 청와대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모습처럼 꼿꼿하고 당당했다.
탄핵정국서 박근혜의 ‘입’ 역할법정에서도 변호인 이상의 애정
검찰엔 “추론과 상상으로 기소”
재판부에도 “주 4회 공판 무리” 법정서 줄곧 당당하던 최순실은
“박 대통령은 죄없는 분…죄송”
유 변호사는 최씨를 원망하기도
“그런 일 없다고 하면 되는데…” 꼿꼿하고 당당한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 “무직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주소지가 어떻게 되죠?” “강남구 삼성동 42-6입니다.” “본적도 같은 곳으로 기재돼 있는데 맞습니까?” “네.” “생년월일이 52년 2월2일생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길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다.” “변호인은 피고인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하는데 피고인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게 맞습니까?” “네. 변호인 입장과 같습니다.” “추가로 재판부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움츠러든 건 최씨 쪽이었다. 최씨는 지금까지 기자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가렸지만 이들이 사라지면 검사나 증인을 똑바로 바라보거나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함께 재판을 받는 박 전 대통령을 의식한 듯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에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첫 재판에서 단답형으로 이뤄진 일곱 마디를 하는 데 그쳤지만 최씨는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제가 이 재판장에 40여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을 나오시게 해서 너무 많은 죄인인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께선 절대 뇌물이나 이런 걸 갖고 나라를 움직였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판이 진정하게 박 대통령이 허물을 벗는, 나라를 위해 여태까지 일했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최씨의 발언은 5월29일 열린 3회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대통령께서 여기 계신 데 죄 없는 분이 여기 계셔서 죄송스럽습니다. 청와대에서 승마하고 유연(딸 정유라)이하고 다 해줬다고 하는데 대통령 지갑에 돈이 1000원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어떤 이익도 본 게 없는데 그걸 그렇게 (뇌물로) 연결시키는 거는 특검의 특수성인 것 같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특별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변호인을 사이에 두고 앉은 최씨가 울먹이든, 자신을 옹호하든 박 전 대통령은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40년 지기…떠나야 했는데” “<한겨레> 취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으로서 최씨가 세상에 드러난 첫 순간은 2016년 9월20일치 <한겨레> 기사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24일 <제이티비시>(JTBC)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담긴 최씨의 태블릿피시를 공개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다음날인 10월25일 제1차 대국민 담화에서 처음으로 ‘최순실’의 이름을 언급한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날인 지난 2월27일 대리인인 이동흡 변호사(전 헌법재판관)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재차 설명했다. “저는 어렵고 아픈 시절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아픔을 겪었었습니다. 최순실은 이런 제게 과거 오랫동안 가족들이 있으면 챙겨 줄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최순실은 제 주변에 있었지만 그 어떤 사심을 내비치거나 부정한 일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이로 인해 제가 믿음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박 전 대통령 공소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피고인 최서원은 피고인 박근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는 등 서로 약 40년간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해오면서 특히 제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선거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한 사람이다.” 최씨는 자신을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을 돕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헌재 탄핵심판에서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혼자 되셔서 마지막으로 국익에 일조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지켜드려야 해서 곁에 남아 있었다”며 “옷 등 개인적인 사생활을 도와드렸다”고 증언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사생활을 챙겼던 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공개한 최씨의 운전기사 방아무개씨의 진술조서에도 드러난다. 방씨는 특검에서 “최씨는 독일 가기 전에도 자신의 돈으로 화장품과 옷을 구입해 이영선·윤전추 당시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잠옷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쇼핑센터 지하의 수입품 파는 가게에서 샀고 수입한 모나비 주스를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을 ‘큰엄마’, ‘삼성동 이모’라고 불렀다는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도 최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최씨가 “청와대에서 추석 선물 받아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 살기 어떻냐. 그 양반(박 전 대통령)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 가사도우미도 이모가 급여를 지급했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2016년 4월부터 2016년 10월26일까지 차명 전화로 두 사람이 한 통화가 570회에 달했다.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된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의 판결문을 보면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진료기록부에 적힐 이름까지 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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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하여 유영하 변호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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