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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9 18:38 수정 : 2017.10.19 21:25


[김윤하의 어쩐지 신경쓰여]

최근 새 노래 ‘무브’를 발표한 태민. 공식 누리집 갈무리
몇 년 전, 어떤 언론사에서 연말 설문지를 받았다. 그 가운데 한 질문이 나를 꽤 오래 고민하게 했다. 올 한해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이었다. 그해 봤던 수많은 공연과 수많은 사람, 수많은 죽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장고 끝에, 그해 첫 미니앨범 <에이스>를 내고 활동한 태민의 ‘괴도’ 퍼포먼스를 담은 한 음악방송을 택했다. 답변을 받은 담당자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별적으로 기사화되는 설문이었던 탓에 딱히 지면을 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진심을 이끌어낸 건, 무대 퍼포먼스가 가진 힘이었다. 수록곡 ‘에이스’와 타이틀곡 ‘괴도’를 이어 부른 그날의 무대는 굳이 태민의 팬이 아니더라도 케이팝을 오래 애정해온 이들이라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질 그런 것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열여섯살에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한 소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신만의 퍼포먼스. 마이클 잭슨에서 고전적인 한국 아이돌팝 공식까지 능숙하게 넘나드는 스타일과 전세계의 크고 작은 무대를 직접 몸으로 겪어온 경험이 깔끔하게 어우러졌다. 강렬한 첫인상이 남긴 기억은 그가 최근 발표한 새 노래 ‘무브’까지 기분좋게 이어졌다. 독특하게도 음악방송이 아닌 ‘2018 봄/여름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처음 공개한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태민의 퍼포먼스가 무엇보다 빛났다. 인종, 나이, 성별, 공간 모든 것을 둘러싼 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어떤 음악가들은 퍼포먼스로 자신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표출한다. 음악을 가장 기본이 되는 구성단위로 놓고, 그 위에 스스로를 표현할 요소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다. 여기에 ‘그렇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지 않냐’는 원론적인 질문은 다소 안일하다. 특히 케이팝을 이야기하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의 수혜를 입고 태어나 유튜브와 스트리밍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케이팝의 발전과 위상은 이미 ‘음악은 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명제를 벗어난 지 한참이나 오래다. 케이팝을 만들고 부르고 춤추고 즐기는 이들에게 음악이란 단지 소리가 아닌, 청각과 시각이 함께 결합한 한 덩어리의 무언가다. 음악은 퍼포먼스와, 퍼포먼스는 음악과 완벽히 호응하며, 성공적인 경우 지금껏 없던 음악의 새로운 형태를 대중들에게 제시하게 된다.

이를 음악의 한 갈래로 보느냐 아니면 전혀 다른 영역으로 두느냐는 개인의 판단과 가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테다. 단지 확실한 한 가지는, 이러한 구조의 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케이팝이라는 음악과 현상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열린 마음으로 두루 살펴보거나 애써 인지하려 노력하지 않는 한 방탄소년단의 ‘쩔어’ 뮤직비디오가 왜 유튜브 조회수 2억뷰를 돌파했는지, 선미가 왜 ‘예쁜 날 두고 가시나’라며 카메라를 노려보고 총을 겨누었는지는 영원히 미궁 속에 갇힌 질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외면과 나태는 결국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내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의 더없이 중요한 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슬픈 단초가 될 것이다.

김윤하/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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