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잡부’로 일자리를 구한 김기태 <한겨레> 기자(왼쪽)가 작업반장과 함께 천장에 먹선을 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③ 일해도 벗어나기 힘든 가난
나르고 쓸고 또 나르고…하루 10시간 30분에 일당 6만5천원 받았습니다
지난 4일 인력회사에 나가보려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방이 추웠습니다. 라디오를 켜니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답니다. 낮게 뜬 보름달이 비추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양지마을을 내려와 지하철 당고개역에 도착하니 5시10분. 매표소가 채 열리기 전이었습니다. 20여분을 기다려 첫차를 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 도봉구 창동 ㄷ인력회사엔 좁은 복도에 30여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하루짜리 일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행 창구와 비슷한 유리벽에 적힌 문구가 살벌합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구역임.’
7일까지 새벽마다 ㄷ인력회사에 나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건설일에 ‘초짜’인데다 기자라니….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일 양지마을에서 가까운 ㅎ아파트 공사장에 ‘잡부’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아침 7시. 직원과 일꾼들이 지하 주차장에 모여 체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30명 남짓한 장정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올라옵니다. 기자는 체조가 끝나고 현장사무소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뒤 김아무개(46) 반장에게 넘겨집니다. 기자를 맞는 표정이 탐탁잖습니다. 현장에서 초짜 일꾼은 일손이 아니라 짐입니다. 일도 서투른데다 다치기 쉬우니까요. 호리호리한 김 반장은 대뜸 ‘석면’(실제 유리섬유를 가리킴) 뭉치에 앉으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옆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꺼내 뭅니다. 아직 제가 기자라는 걸 모릅니다. “첫째가 몸이고, 둘째가 일이야. 아무리 가벼운 것을 들어도 그 순간에는 집중해야 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허리라도 다치면 그날로 ‘공치는’ 거야!” 김 반장은 초짜가 못내 불안한 표정입니다.
첫일은 유리섬유 나르기. 김 반장과 101동 각층에 유리섬유 뭉치를 옮겨놓아야 합니다. 길이 3m, 너비 1., 두께 4㎝ 가량의 ‘벽산 그라스 울’ 20장을 들어야 합니다. 무겁지는 않아도 부피가 커, 들자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김 반장이 만세 부르는 자세로 짐을 붙잡고 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기자는 두어번 기우뚱거리다가 요령을 터득합니다.
이번엔 짐을 진 채 김 반장을 따라 102동 ‘호이스트’로 갑니다. 호이스트란 임시 엘리베이터입니다. 102동 석면을 다 옮기자, 이번에는 길이 4m, 너비 5㎝, 두께 2㎝의 기다란 합판 뭉치를 옮기는 일이 기다립니다. 한꺼번에 20장씩 옮깁니다. 무게도 상당하고, 중심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두어번 오가니 벌써 이마에 땀이 맺힙니다. 김 반장은 “힘으로 하지 말고 요령을 익혀라”라고 말합니다.
얼추 마무리하고 나니 오전 11시. 김 반장과 옆동 1403호로 올라갑니다. ‘우리 반’의 김아무개(39)·채아무개(40) 형님이 합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드릴과 톱소리가 요란합니다. 김 반장과 형님들이 짧게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황량한 아파트 공사 현장이지만, 벽에 걸어놓은 라디오에서 그나마 노랫가락이 흘러나와 사람 사는 느낌이 납니다.
이곳에서 할 일은 청소입니다. 41평 아파트 바닥에 수북이 널린 톱밥과 석고 조각,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비질 몇 번 하니 먼지가 부옇게 일어납니다. 점심시간 전까지 마무리하려면 게으름 부릴 수도 없습니다. ‘먼지 안개’ 속에서 30여분 지나니 목이 깔깔합니다.
11시50분. 김 반장과 형님들을 따라 식당으로 갑니다. 7층에서 따로 일하던 임아무개(43) 형님도 낍니다. 그렇게 우리 반은 다섯입니다. 김치, 도라지, 마늘, 나물, 콩나물과 된장국이 찬으로 나옵니다. 밥의 양은 보통 식당보다 1.5배 정도 됩니다. 밥을 넘기는데 목이 계속 따갑습니다. 형님들은 어제 안주로 먹은 곱창에 영 불만이 많은 듯합니다. 김 반장 빼고, 세 형님이 소주 일곱병을 먹었답니다. 안주보다 술값이 더 나왔답니다.
점심을 마치고, 새 일을 합니다. 김 반장을 따라 101동을 돌면서 방과 방 사이 벽이 들어설 자리에 ‘먹선’을 치는 일입니다.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 레이저 빔을 쏘는 ‘레이저 래디에이션’과 먹통·줄자 따위 공구를 들고 7개 방을 돕니다. 혹시라도 먹줄을 잘못 퉁겨 몇 밀리미터 오차라도 나면 “골치 아프기 때문에” 상당히 집중해야 합니다. 말을 구수하게 잘 푸는 김 반장이 갑자기 과묵해졌습니다.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쉬지 않고 각 방의 길이를 재고, 벽과 바닥과 천장에 선을 쳤습니다. 4시가 넘자, 김 반장이 비로소 플라스틱 상자 위에 앉아 담배를 뭅니다. 그는 “건설 쪽에 조선족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인건비가 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4시반. 다시 102동 7층 방을 치우러 갑니다. 오전과 똑같이 톱밥과 나무, 석고 조각들 사이를 부산히 움직입니다. 겨울이라 해가 짧습니다. 5시가 넘자 어둑어둑해지더니, 5시반엔 어느새 컴컴합니다. 먼지가 안 보이니 차라리 마음은 편합니다. 김 반장의 그림자가 복도 쪽에 보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현장사무소를 찾으니 일당을 줍니다. 6만5000원. 요즘 잡부 일당입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저임금에 비정규직 ‘빈곤층’ 굴레
‘저숙련 → 반숙련’ 전환 빈곤탈출 돕고
일하는 저소득층에 장려금 지급 절실
|
자활사업을 통한 탈빈곤 현황
|
건설업을 하는 하아무개(43)씨는 지난 16년 동안 많은 집을 지었지만, 정작 자신의 집은 없다. 미혼인 그는 서울 상계동 양지마을의 부모님 집에 살고 있다. “건설쪽 일이 워낙 굴곡이 심한 일이라”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돈이 조금 모인다 싶으면 새어나갔다. 지난 5월엔 경기 양수리에서 카페 만드는 일을 도왔지만, 공사비 2천만원을 떼였다. 지난해 말부터는 임대료가 싼 경기 포천까지 가 13평짜리 건축 사무실을 열었다. 포천의 숙소는 월세 10만원짜리 4평 쪽방이다. 천성이 부지런한 하씨지만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하씨처럼 충분한 노동 능력도 있고 부지런히 일도 하는데 막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근로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이는 늙거나 병들어 가난에 시달리는 전통적인 빈곤층과는 다른 계층이다. 하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지런히 노력하면 부자 된다’는 말은 이제 옛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3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약 4.4%로, 210만명 가량에 이른다. ‘근로 빈곤층’ 다수는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등이다.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실업자를 제외한 근로 빈곤층 가운데 35.6%는 상용직 노동자, 32.3%는 자영업자, 23.3%는 임시직·일용직 노동자라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근로 빈곤층의 절대 다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절반 이상이 경제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 되는 30~60대 인구”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일을 해도 가난할 걸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대명 박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고 영세 자영부문이 커지고 있는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는 “현재 빈곤한 임금 노동자의 95%가 비정규직”이라며 “한국 근로자 중 35% 정도가 자영업에 종사하지만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2년 이상 수익을 내면서 영업을 계속할 확률은 20%를 밑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일할 능력이 있는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독립을 지원하는 ‘자활근로사업’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그래프 참조). 서울 상계동의 노원자활후견기관 대표 권춘택 신부는 “자활근로로 돈을 벌어 수입이 최저생계비보다 높아지면 오히려 각종 지원이 끊기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애써 자활근로를 하겠다는 동기를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허점을 보완해 저소득층 노동자가 실제 번 돈에 비례해 일정액의 장려금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 제도가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고 있어 국회 통과는 미지수다. 노대명 박사는 근로 빈곤층 문제 해결을 위해 그들의 취업능력 개발과 사회안전망 확충이 절실하다고 제안한다. 그는 “저숙련, 비숙련 상태의 노동인구를 최소한 반숙련의 노동인구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저조한 근로 빈곤층의 국민연금, 고용보험 가입률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