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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3 19:13 수정 : 2006.12.13 23:03

자활후견기관서 만난 여성가장들

자활후견기관서 만난 여성가장들

양지마을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간 뒤 10분을 더 걸으면 24평의 커다란 주방에 다다릅니다. 서울 상계2동에 있는 ‘유기농 자활공동체’입니다. 사회복지단체 ‘노원자활후견기관’이 운영하는 이곳에선 여섯 명의 빈곤층 여성이 유기 농산물을 재료로 반찬을 만듭니다. 11월부터는 시범적으로 주변의 몇몇 기관에 반찬을 공급하지만, 내년부터는 100가구로 판로를 넓힐 계획입니다. 지난 11일 오전 이곳을 찾아, 일하는 여성가장 네 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분은 담담하게, 어떤 분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가장 고참인 윤아무개(52)씨. 남편과 이혼한 뒤 1996년 시작한 갈비식당은 외환위기가 닥치자 “바로 손님이 없어져서” 망했습니다. 그뒤 지하상가에서 액세서리를 팔다가 99년 근로복지공단에서 모자가정을 위한 전세금을 대출받아 건어물 가게를 열었습니다.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등록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이자를 다달이 30만원씩 내야 했어도, 장사는 조금씩 궤도에 오르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모시고 사는 친정어머니가 폐암에 걸렸습니다. 수술비만 2500만원 나왔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전세금도 6년 기한을 마치고 빠졌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빚이 5천만원입니다. 은행 대출 이자는 어떻게든 갚겠지만, 사채 이자는 엄두도 못 냅니다. 딸 급식비를 감당하지 못해 두달 전 학교를 찾아가 먼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안 딸이 자존심 상해 하자 윤씨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 도우면서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딸이 공부를 곧잘 하는 것이 위안거리입니다. 딸은 친구들 참고서와 문제집을 복사해 씁니다. 다른 과목은 괜찮은데, 논술만은 걱정입니다. 딸을 위해 윤씨는 밤마다 호프집에서 닭을 튀겼습니다. 하지만 기관지가 약해서 그런지, 가슴이 아파 요즘에는 일을 못합니다. 그는 “정부의 지원은 그냥 평생 이렇게 지원을 받고 살라는 것인지, 아니면 재기를 위한 디딤돌을 주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성가장들 일자리
박아무개(29)씨는 서울 노원구 임대아파트에서 5살 난 딸, 80살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2001년 결혼했지만 남편이 도박에 빠져 이듬해 이혼했습니다. 아이가 7개월 때였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박씨는 결혼 전 함께 살던 할머니에게 돌아왔습니다. 이혼 뒤 의류공장과 할인매장에서 일했습니다. 월 수입은 각각 70만원, 85만원 정도. 말을 배우기 시작한 딸은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딸에게 “아빠 죽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게 차라리 낫다는 겁니다. 가끔 친구 부부와 만나면 딸이 친구 남편에게 매달리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아기는 누가 봐줄지 “막막”합니다.

윤아무개(37)씨는 서울 구로구의 28평 빌라에 살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지난해 11월 남편이 잠자다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당장 7살 아들과 9살 딸을 데리고 생계를 이어야 했습니다. 집에서 액세서리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수입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부의 기초생활 지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였습니다. 아빠가 없다고 동네 아이들한테 자꾸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7월 이곳으로 이사왔습니다.


‘유기농 도시락팀’의 막내인 최아무개(28)씨는 2004년 이혼했습니다. 네살짜리 아들과 모자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혼 뒤 어린이책도 팔고, 화장품도 팔았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한해 동안은 을지로에 있는 단추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정규직으로 들어오라고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수입이 잡혀 기초생활 수급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계속 일용직으로 일했습니다. 책 제본 회사에서도 일했습니다. ‘오공 본드’를 써서 책을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머리가 자꾸 어지러웠습니다. 최씨가 일하는 동안, 아들인 진문(가명)이는 어린이집에 맡깁니다. 얼마 전 진문이가 친구랑 다투다가 “너는 아빠도 없잖아”라는 얘기를 듣고는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최씨의 꿈은 “전셋집으로 이사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난 분들, 최씨와 꿈이 비슷비슷합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저도 소망을 가져봅니다. 이분들의 반찬사업이 무럭무럭 커 나가기를, 그래서 밤이면 가족들과 두다리 쭉 뻗고 평화로운 잠을 청할 수 있기를.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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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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