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2.13 19:24 수정 : 2006.12.15 11:57

양지마을 주민 김아무개(47)씨가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4동 양지마을 자신의 집에서 자개를 붙이는 부업을 하고 있다. 방이 어두워 겨울에도 문을 열어둔 채 일하는 김씨의 팔에는 파스가 붙어 있다. 김씨가 일하고 있는 책상 위에는 둘째딸이 까주고 간 귤이 놓여 있다. 김씨의 둘째딸은 마을 공부방에서 저녁 6시까지 방과후 학습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④ 양지마을서 홀로 아이 키우는 40대 여성
두 아이와 한 방…돈 아끼려 보일러 안돌려
“똘똘한 둘째딸 뒷받침 해줘야 하는데” 한숨

김아무개(47) 아주머니의 눈빛은 형형합니다. 팍팍한 세월을 거치며 찌든 고단함보다는, 그것을 이겨낸 강인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는 기자가 묵는 서울 상계동 양지마을의 이웃입니다. 지난 12일 10평짜리 아주머니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연달아 화통한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도 던져가며, 지난 삶을 이야기로 맞이해줬습니다.

그는 40년째 양지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동갑내기 남편과는 1991년에 결혼했습니다. 부모가 “도끼자루 들고 말릴 때” 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정작 남편과 ‘살 붙이고’ 산 해는 3년도 안 됩니다. 남편은 사기·폭행 등 온갖 죄목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습니다. 경제적인 도움을 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에 들지 않아 나라의 지원도 못 받았습니다.

단 한 차례, 남편이 2002년에 불쑥 1500만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지금 사는 10평짜리 집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그 전에는 오래도록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짜리 판잣집에서 지냈습니다. 주변 집들은 모두 철거되고 달랑 남은 한 채였습니다. 그곳에서 미싱일을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벌판에서 혼자서 일하는 기분”이었답니다.

미싱일은 중학교를 중퇴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벌이가 좋았던 90년대 초에는 한 달에 70만원까지 벌었습니다. 밤낮으로 미싱을 돌리다 보니, 첫째딸은 아기 때 미싱소리가 멈추면 잠에서 깼습니다. 98년 무릎을 다친 뒤로는 미싱일도 못합니다.

다리가 불편해 바깥 일을 못하니까, 집에 앉아 자개 붙이는 일을 합니다. 자개 조각을 가로 25㎝, 세로 15㎝인 종이에 붙이면 400원을 받습니다. 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 달을 꼬박 일하면 15만원을 받습니다. 어두우면 이 일을 못하는데, 이 집은 낮에도 문을 닫으면 방이 컴컴합니다. 전등을 켜자니 전기세가 아깝습니다. 햇빛이 들게 문을 열어놓고, 대신 옷을 껴입고 일을 합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기름값 걱정으로 보일러를 틀지 않습니다.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두 평 공간에 전기장판을 깔고 모녀 셋이 함께 잡니다. 그나마 재작년에 이혼하고 나니 기초생활 보장 수급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달에 41만원 가량 나옵니다. 두 딸과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턱도 없이 모자랍니다.

중학교 3년인 첫째딸은 요즘 말을 안 듣습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 …” 하는 생각이 들어 속상합니다. 조숙한 둘째딸(초등 6)은 어머니로서 보기에 “아깝습니다.” 미술을 잘하고, 또 하고 싶어 하는데,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엄마가 주변에서 뭐든 자꾸 주워오니까, 둘째가 여섯살 때 하루는 남의 집 쓰레기에서 바구니를 주워 들고 왔습니다. 그 뒤로 아주머니는 아이들 몰래 물건을 주웠습니다.

나라별 남성 빈곤율 대비 여성 빈곤율

이런 일들이 떠오를 때일까요. 가끔은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운답니다. 아주머니는 그 이야기마저도 걸지게 합니다.“미친 년도 아니고 말야 …” 그러곤 어느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바꾸더니, “나는 평생 ‘아줌마, 커피 주세요’ 하면서 살 줄 알았어!” 합니다. 기자는 함께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했습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일 · 양육 짊어진 여성가장 ‘고통 두배’

한부모 취업여성 65%가 저임금 일용직
정부지원액 적고 수혜층 얇아 도움 한계

가난한 여성 가장이 경제적으로 재기하는 실마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가지 있는 제도도 혜택을 받는 숫자가 턱없이 적거나, 막 걸음마를 뗀 단계에 있다. 특히 이혼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양육과 노동의 짐을 동시에 짊어지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여성 가장들이 유기농 반찬을 만들어 팔며 자립의 꿈을 키우는 ‘유기농 자활공동체’ 주방에서 4명의 여성 가장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성가족부가 13일 발표한 ‘이혼 뒤 자녀양육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가장이 처한 현실이 잘 드러난다. 한부모 여성 320명 중 취업자는 이혼 전 163명(50.9%)에서 이혼 뒤 265명(82.8%)으로 크게 늘었지만, 새로 취업한 여성들의 65%가 임시 일용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근로소득도 53.8%가 100만원 이하였다. 조사에 응한 한부모 남성 67명 중 월 100만원 이하를 버는 이는 11명(16.4%)에 불과했다.

올해 통계청의 가계조사를 봐도, 여성 가장에 딸린 인구 중 무려 13.4%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으로 절대빈곤선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성 가장의 경우 절대빈곤률이 4.3%인 것에 비해 세배가 넘는 수치다.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모자 가정을 돕는 정책 중 그나마 의미가 있는 것은 ‘모부자복지법’에 따른 지원이다. 배우자가 없는 남녀 가장에게 6살 미만 어린이의 양육비(1명당 월 5만원)와 고등학생 자녀의 입학금·수업료를 지급한다. 그러나 액수가 너무 적고, 적용 대상층도 얇다. 소득 수준(최저생계비의 100~130%), 아이의 나이(6살 미만) 등 자격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제외한 125만 한부모 가구 가운데 오직 4.6%인 5만7천여 가구만 이 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어린이 양육비 지원액을 매달 10만원으로 올리고, 2010년까지 지원 대상을 13살 미만까지로 올리는 예산안을 마련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상정돼 있지만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빈곤층 여성 가장이 머무를 수 있는 시설로는 전국에 모자복지시설 40곳이 있다. 집없는 여성 가장들이 2~3년 동안 지내면서 경제적인 독립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이라 시설이 낡고 열악하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만 의존하다보니 직업훈련이나 상담서비스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대부분의 모자복지시설이 내용있는 교육이나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한 채 숙소 제공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이런 시설도 부족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201가구가 입주 대기 상태다.

이밖에도 이혼이나 사별 등의 위기를 맞은 여성 가장들을 위한 긴급 생계급여 제도가 있다. 올해 3월 시작된 이 제도는 1만2천여가구에게 최저생계비를 제공했다. 여성 가장에게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 가장 희망센터’는 전국 5곳에서 시범 운영 중인데, 사업 자체가 존폐 논란을 겪다가 내년부터 담당 부처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넘어간다.

송다영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여성 가장은 노동시장에서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열악한 육아 여건을 견디고 있지만, 정작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 ‘기초생활수급권자’란? =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버는 가구에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가구 소득과 최저생계비의 차액을 지급해주는 제도. 이에 해당하는 가구를 기초생활수급권자라고 한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