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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8 09:13 수정 : 2006.12.18 15:02

김용덕 간호사가 백수일(54)씨의 혈압을 재고 있습니다. 반지하방에서 사는 백씨는 뇌병변과 당뇨를 앓아 숟가락질 하기도 힘듭니다. 시립병원에 들어가보려고도 했는데 간병인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해서 접었습니다. 친구가 매일 들러 형편을 살펴주는 덕분에 그나마 지낼 만합니다.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⑤간호사와 함께 만난 ‘집안 환자들’

지난 15일 온종일 서울 노원구 보건소에서 일하는 김용덕 간호사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상계동과 중계동의 300여 가구를 맡아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일을 합니다. 이날은 상계4동의 양지마을과 주변 상계2동, 중계본동 쪽을 돌며 환자 다섯 명을 찾았습니다. 부실한 공공의료 현실에서 이 환자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지만, 여전히 제한된 지원이어서 ‘그저 고통을 견디며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게 걸맞을 겁니다.

먼저 양지마을 박상윤(73)씨 집에 들어서니, 두평짜리 방의 절반을 침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침대엔 부인 김분용(78)씨가 뇌출혈로 5년째 누워계십니다. 부인이 쓰러지자 한 해 만에 수술비와 생활비로 수중에 있던 800여만원이 다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 모두 사업이 망해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큰아들은 행방을 알 수 없어 손자 영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르던 상황이었습니다. 마포에 사는 동생이 그나마 힘이 됩니다. 2003년 김씨가 재수술을 받아 370만원이 들었습니다. 동생이 도와줬지만, 수술비 중 170만원은 아직도 병원에 빚지고 있습니다.

중풍 5년된 할머니 수술비 170만원 빚남아
손자가 성인되니 지원 줄어

박상윤(73·오른쪽)씨가 아내 김분용(78)씨에게 주사기로 유동 영양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김씨는 2001년 미싱을 돌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계속 침대에 누워 지냅니다. 남편 박씨는 김씨 수발을 드느라 장삿일을 접었습니다. 이들은 2년 전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됐지만 수술비와 생활비 등에 짓눌려 가스와 수도 요금을 체납하기 일쑤입니다.
어느날 박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마을 통장이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선 주민등록상 첫아들이 함께 살고 있고, 박씨 이름으로 차까지 등록돼 있어서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이 차는 큰아들이 박씨 이름으로 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의 주민등록을 말소시키고 2004년 8월 수급권자가 됐습니다. 한 달에 39만원이 나옵니다. 장애수당 10만원과 노인수당 등을 합치면 한 달 수입이 53만원 가량 됩니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부인의 환자용 음식값만 다달이 12만원 가량 듭니다.

각종 공납금은 엄두도 못냅니다. 수급권자가 되기 전 밀린 건강보험료가 100만원이 넘습니다. 언젠가는 도시가스 요금이 밀려 계량기를 떼어갔는데, 동생이 도와줘 간신히 가스는 계속 들어옵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엔 마침 북부수도사업소 직원 강아무개씨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강씨는 ‘정수처분 예고서’를 들고 있었습니다. “기일 내 체납된 금액을 납주하지 않으실 경우에는 2006년 12월23일 이후 정수처분할 예정이니, 행정처분으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밀린 상수도 요금이 136만2270원. 박씨는 지난 4년 동안 무려 스물세번이나 수도요금을 제때 못냈습니다. 박씨는 강씨에게 “물이 새는데, 그걸 고칠 비용도 없어서 …”라고 말합니다.

눈 아파 병원 갔지만 5만원 아까워 검사 포기


박씨는 요즘 걱정거리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지난 8월 부인이 병원에 잠시 입원했는데, 퇴원할 때 보니 치료비가 16만원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병원비가 이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대학생이 된 손자에게 ‘근로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지방대에 다니는 손자는 아직 경제력이 없습니다. 집에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준민 (68)씨는 정신질환에 고혈압·당뇨·뇌혈관 질환까지 앓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동생도 신경질환에 걸려 아내 김안식(68)씨가 두 사람을 돌보는데, 아래층을 월세놓아 받는 20만원이 이들의 유일한 수입입니다. 의료 급여를 받지만, 비급여 항목인 경우엔 5만원짜리 안과 검사도 엄두를 못냅니다.
두번째로 찾아간 양지마을 언저리의 이준민 (68)씨는 부인의 수발을 받으며 지냅니다. 함께 살고 있는 동생까지 세 사람 모두 일을 못하지만 어머니가 물려준 35평 집이 있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차상위 계층으로서 의료 혜택을 받습니다. 이씨는 얼마 전부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눈이 아파 안과에 갔습니다. 그러나 검사 한번 받는데 5만원이나 든다기에 그냥 돌아왔습니다. 이 검사는 의료 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계2동에 사는 백수일(54)씨는 뇌병변과 당뇨가 심해 반지하방과 화장실 사이의 턱도 넘지 못합니다. 자활활동을 하는 기초생활 수급권자들이 백씨를 찾아 면도나 목욕 수발을 드는데, 백씨는 “그 사람들이 막 다룬다”고 띄엄띄엄 말했습니다. 백씨는 자활 후견기관의 방문 도움은 거부합니다. 동행한 김 간호사는 “자활활동에 참여한 분들이 돌봐야 할 환자가 많다보니 섬세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백씨는 운이 좋습니다. 오랜 친구인 윤채옥씨가 거의 매일 찾아와 백씨의 수발을 들어줍니다. 윤씨는 동사무소나 보건소 등에 백씨가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많이 요구합니다. 백씨는 앞니가 빠져 보기 흉하지만, 새로 이를 해 넣는 데 들어가는 비용 90만원은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그냥 내버려둡니다.

홍성남(65)씨는 중학생 아들과 임대아파트에 삽니다. 20여년 전 뇌졸중에 걸린 팔과 다리를 잘 못 쓰고 당뇨와 고혈압도 있습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데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많은 게 불만입니다.

홍성남(65)씨는 “80년대 말”에 뇌졸중에 걸린 뒤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책상을 내리치면서 끈질기게 요구해서” 꾸준히 생계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엔 한 달에 장애급여 10만원과 기초생활 수급액 59만원을 받습니다. 지난 10월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이기구에 “운동하러” 올라갔다가 떨어져 오른쪽 허벅지를 크게 다쳤습니다. 그 뒤 4주 동안 입원하면서 허벅지뼈와 골반뼈 사이에 인공뼈를 박는 수술을 했고 퇴원할 때 84만원을 냈습니다. 그는 “무료 의료지원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최아무개(51)씨는 1997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요즘엔 관절염이 심한데도 진통제로만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딸이 수입이 있어 의료급여도 받지 못합니다. 보건소에서 1주일에 세차례 나와 엉덩이 욕창을 치료해주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최아무개(51)씨는 가족들이 집을 비우는 낮엔 혼자 중계동 14평 임대아파트 방바닥에 앉아 생활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넘어지면 손 닿는 거리” 안에 밥통과 전화기, 소독거즈통, 물통 등을 두고 삽니다. 97년 식당일을 하다 2층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입니다. 식당으로부터는 “꼬부라진 물파스” 하나 받았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딸이 월급 85만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병원비만 60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지금은 두 딸의 수입을 합하면 175만원입니다. 4인 가족 최저생계비가 117만원이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권자도 차상위 계층도 아닙니다. 모든 의료비를 스스로 치러야 합니다. 고혈압과 위장질환에 시달리는 최씨는 한 달에 약값만 5만원 정도 듭니다. 하반신 마비로 기저귀와 물티슈를 써야 하는데, 한 달에 20만원 정도 듭니다. 2년 전부터는 이상하게 허벅지쪽의 뼈가 “터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관절염 진단을 받았는데 약값이 한 달에 4만5천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어차피 일어서지도 못하니까, “포기”했습니다. 그냥 진통제 먹고 참을 뿐입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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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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