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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2 07:56 수정 : 2006.12.22 08:28

췌장암 진단을 받은 함필선(64)씨가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4동 양지마을 자신의 집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시름에 잠겼다. 그는 기름값이 비싸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이나 전기난로로 겨울을 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⑥64살 함필선 할머니 암선고 받던 날

남편과 이혼·아들부부 자살 30여년 행상…쓰레기 수집…
모자란 치료비에 울먹…가난에 췌장암까지 덮쳐 “무슨 죄”

지난 18일 오후 3시께 양지마을 15통 통장 부인인 이득희 아주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자님, 얼른 우리 집으로 와보세요.” 기자의 집에서 100m도 안 되는 곳입니다. 달려갔습니다. 거기에는 몸집이 작은 할머니 함필선(64)씨가 계셨습니다. 초췌한 모습입니다. 제가 도착하자 주섬주섬 병원 서류를 꺼냅니다. 잔뜩 겁먹은 표정입니다. “할머니가 암이래요.” 통장 아주머니가 옆에서 거듭니다. 전문용어에 영어투성이인 진단서는 기자가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딱 한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cancer’(암).

할머니는 고향이 충북 중원군입니다. 1948년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7남매가 북적이는 집이 싫어 19살 때 가출한 뒤 대전에 내려가 식당일을 했습니다. 거기서 15살 더 많은 ‘건달’ 남편과 만났습니다. 21살에 아들을 낳았고, 32살에 남편과 헤어져 서울 상계동으로 올라왔습니다.

판잣집이 즐비했던 상계동에서 “야채 (비닐) 하우스”에서 일도 하고, 쓰레기 수집도 했습니다.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마다 이사를 했지만, 상계3·4동을 벗어난 적은 없습니다. 일 다니느라 “신경을 못 써서” 아들은 중학교를 중퇴했습니다. 몇 해를 빈둥거리더니 공사판에 나가 ‘새끼 목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도 80년대 중반께 두부 행상을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아들이 여자를 데리고 와, 상계역 앞에 월세 12만원짜리 방을 잡아줬습니다. 아들은 93년 여자가 약을 먹고 자살하자, 주검을 안치한 병원에서 목을 맸습니다.

96년 통장이 안내해줘 영세민으로 등록했습니다. 취로사업인 “새마을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매달 20일께 29만9680원이 들어옵니다. 틈만 나면 길에서 종이 박스를 모아 한 달에 2만~3만원 버는 것이 과외 수입입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더니, 곧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 병원에 갔습니다. 방사선 검사를 받았습니다. 11월14일, 췌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할머니는 오는 24일 원자력 병원에 입원해 27일 수술을 받습니다. 의료 급여를 받는 수급권자지만, 아직 노동능력이 있는 64살이기에 치료비 일부를 부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치른 병원비만 38만4254원입니다. 입원하면 비용이 더 들겠지요. 무료인 6인실에 가고 싶지만, 자리가 없어 비싼 2인실에 들어가야 합니다. 8평짜리 집의 전세금 800만원이라도 빼야 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생전에 무슨 죄를 지어서 …”라며 울먹였습니다. 절망한 사람 특유의, 시커먼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이튿날에도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기자에게 말만 잘하면, 그래서 기사화라도 되면, 온정의 손길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압니다. 하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합니다. 한참을 뜸들이던 할머니가 되묻습니다. “배운 게 없어서 …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해요?” 그러나 기자도 걸맞은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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