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1 09:35
수정 : 2018.01.11 10:08
[ESC] 웹소설 읽어주는 남자
드라마에는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유명한 것이 의학 드라마나 검사·판사가 나오는 수사물이다. 배역의 직업 이름 끝에 ‘사’가 들어가면 드라마가 뜬다는 말이다.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비밀의 숲>, <마녀의 법정>, <이판사판> 등도 검사, 판사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웹소설에서만큼은 추리·수사 장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가가 해당 장르를 창작하기 위해선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범인을 만들고 알리바이와 범죄 수법을 만들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추리해 들어가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연재 속도가 빠른 웹소설에선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다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짧은 분량으로 연재되는 웹소설이니만큼, 복잡하고 치밀한 복선은 자칫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웹소설 시장에선 정말 제대로 된 추리물은 나올 수 없는 걸까. 그저 단순한 ‘추리적 요소’가 들어 있는 정도로 끝일까. 고도의 추리력으로, 증거를 모아 알리바이를 깨부수는 수사물은 나올 수 없을까.
그러나 지난해 웹소설 시장은 그런 의문을 시원하게 깨주는 소설들이 등장한 한 해였다. <우리지검 평검사는 최대형량>부터 <대한민국 검사 청정국>, <재벌 잡는 회귀검사>까지. 그리고 그중에 재미와 특이성을 동시에 잡은 수작도 있었다. 바로 <판사 이한영>이다.
<판사 이한영>은 판사였던 이한영이 대기업과 정부의 비리에 꼿꼿이 맞서다 죽임을 당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과거로 돌아온 이한영은 자신의 힘이 부족해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차근차근히 힘을 비축한다.
자신의 편에서 서서 정의를 수호하려는 판사들을 모으고,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동료들을 모은다. 검사부터 기자, 그리고 사기꾼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모인 이한영 팀이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순간의 짜릿함은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한영 판사가 맞서야 하는 적은 무척이나 거대하다. 국가를 쥐고 흔드는 악의 수장 역시 판사였다. 법과 법이 맞서고, 그 사이에 오가는 검은돈까지.
지난해 수사물 웹소설들은 드라마와 달리 복잡한 복선을 배제하고, 플롯을 단순화해 범인을 빨리 잡아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자, 그럼 이한영 판사가 내리는 유죄 판결을 감상하러 재판장으로 함께 가보지 않겠는가.
이융희(장르소설가 겸 문화연구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