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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3 13:13 수정 : 2017.12.23 20:02

[토요판] 박조건형의 일상 드로잉
⑦ ‘집’이냐 ‘짐’이냐

만덕재개발 풍경. 2015.9. 펜, 색연필. 25x21cm

우리가 원하는 ‘집’의 모양과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 건지,
왜 ‘집’을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현실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짝지와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친다. 큰 평수의 아파트들을 보면 대체 저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직장에 다니는 걸까 궁금해진다. 부럽다는 감정은 아니고 그냥 저 평수의 아파트에 살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이 궁금했다. 다들 맞벌이를 하는 걸까, 아니면 남편 혼자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양산에서도, 아파트 한 채 가격이 3억, 4억을 넘어가고, 서울 같은 경우는 10억을 넘어가는 곳도 많은 걸 보면 정말 딴 세상 이야기 같다. 왜 이렇게 집값이 올라, 자기 집에서 사는 일이 힘들어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원룸에 살다가, 친구도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기에(원룸 가격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19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구해 방 두 개에 월세 25만원을 내고 살았다. 생산직 직장을 다녔던 나의 월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고, 짝지는 소설만 쓰면서 가끔 들어오는 강의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정도여서 우리 생애에 집을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집을 산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때 살던 아파트가 좀 오래된 집이어서 월세가 자주 오르지는 않겠지 생각했다. 월세에 따라서 이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집안의 짐을 너무 늘리는 것도 곤란하다. 이사를 한 번 할 때마다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월세를 내고 있다고 했더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돈을 좀 보태줄 테니 나중에 이사할 때 전셋집이라도 구해보라 하셨다. 계약 기간이 끝나갈 즈음 양산에 있는 아파트와 주택 시세들을 알아봤는데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사하기엔 부담스러웠다. 2억, 3억 아파트에 사는 가구들도 대부분 대출을 받아 대출이자를 갚으며 그렇게 집을 마련한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내 수중에 있는 돈도 많지 않고, 생산직에서 계속 일을 하며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도 힘들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대출이란 결국 빚이다. 그 빚을 감당하며 늙어서까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매매계약 장면. 2017.2. 펜, 수채화. 30×15㎝
그러다가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아래쪽에 14년 된 아파트 시세가 24평에 1억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단 구석지역에 있어서 교통편도 불편하고 주변에 상가들도 없는 지역이라 그런 것 같았다. 당장 짝지와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갔다. 같은 동에 있는 집을 세 개 봤는데, 한 집이 마음에 들었고, 짝지와 상의 후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동남향 방향이라 햇볕도 잘 들었다. 어머니가 빌려주시는 ‘부모론’과 내가 가지고 있는 조금의 돈을 합치니 다행히 집을 매매할 정도는 되었다. 내 평생 집을 사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집 매매 자체를 처음 하다 보니, 위험 부담이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내 집이 생기고 월세로 나가는 돈도 줄고 아이 계획도 없다 보니 욕심부리지 않고 부부 둘이서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소박하게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의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도움도 받은데다가 집값이 이렇게 싼곳은 지방의 경우라도 사실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만을 모아 집을 구하기 힘든 세상이다. 직장조차 안정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독립하기 어려운 자녀들은 결국 부모들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아마 어머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월세를 내며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살았을 것이다.

초량 까꼬막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2017.8. 펜, 색연필. 26×18㎝
독립한 지인들을 만나면 보증금은 얼마인지, 월세는 얼마인지, 전세는 얼마인지 조심스레 물어보곤 한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생활을 유지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주거비로 나가는 돈이 많을수록 장시간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을 하면 자녀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지고, 저녁이 있는 삶은 점점 더 멀어진다. 노동의 노예가 되어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름의 타개책으로 자녀를 가지지 않는 부부들도 늘어나고, 결혼하지 않고 비혼을 택하기도 한다.

돈이 없는 청년들은 공유주택 같은 것을 마련해 주거비를 줄이기도 하고 발품을 팔아 가격이 싼 주택을 찾아 여기저기 누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고 떨어져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많은데, 주거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 댁에 신세지며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이 102%라는데(2015년 국토교통부 발표 기준), 우리에게 ‘내 집’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참 씁쓸하다. 내 집을 갖기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따위의 말들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집’의 모양과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 건지, 왜 ‘집’을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현실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집’이 행복은 아니더라도,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짐’이 되지 않도록.

해운대 아이파크. 2017.6. 펜,마카. 15×20㎝

엘리베이터 버튼. 2017.6. 펜, 마카.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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