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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손창완의 진보회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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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이사제’에 관한 논쟁이 치열하다. 이 논쟁은 KB금융지주 사외이사 선임 건에서 비롯됐다. 노동조합은 주주제안 형태로 참여연대 출신 하승수 변호사를 추천했으나, 다수 주주의 반대로 부결됐다. 그런데 KB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위 안건에 찬성하여 주목을 받았다. 노동이사제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여서 경제계는 이를 노동이사제 도입의 전주곡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경영자단체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보수언론도 ‘노치(勞治)’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이번 논쟁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사회적으로 매우 유익하다.
이번 논쟁이 유익한 이유는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회사를 그 논쟁의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법인세 신고를 한 회사만 59만개(2015년 기준)가 넘고, 이 회사들은 한해 45조원 상당의 법인세를 내며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 또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직장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른 임금노동자 수는 1900만명 정도인데, 상당수는 회사에서 일한다. 여기에 회사와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노동자 대다수가 회사와 관련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회사는 경제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중에서도 ‘생산’과 ‘분배’에 관한 문제여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회사 가운데 90% 이상인 주식회사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노동이사제’는 주식회사 이사회에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거나 노동자가 추천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다. 회사 의사 결정에 관한 문제를 학문적으로는 ‘회사지배구조’라 한다. 회사지배구조에 관한 지배적인 이론은 회사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이며 회사 지배권은 주주에게 있다는 주주중심주의다. 필자는 주주중심주의를 ‘오로지’ 주주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주지상주의라고 부른다.
노동이사제를 반대하는 논리 중심에는 주주지상주의가 있다. 전통적인 주주지상주의는 “주식회사는 주주 소유”라는 통념에 근거한다. 주식회사가 주주의 ‘소유’라면 노동자가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주주의 재산권 침해가 되어 허용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 법적으로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주주는 회사 주식의 보유자일 뿐 회사 재산에 대하여 직접적인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회사 이익을 배당받는 수동적인 지위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회사를 계약적으로 이해하는 계약론적 주주지상주의(계약이론)가 나왔다.
계약이론은 회사를 ‘계약의 결합체’로서 생산요소 소유자들 사이의 계약관계를 결합하는 도구로 본다. 이에 따르면 주주, 노동자, 채권자 등 회사구성원 사이의 지위는 평등하고 누구에게도 회사에 대한 우선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주는 회사의 소유자가 아니라 생산요소 가운데 하나인 ‘자본공급자’의 지위만 갖는다. 다만 계약이론은 회사가 주주의 것은 아니지만, 주주가 회사의 의사 결정 결과에 따라 투자한 돈을 잃을 수 있는 큰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회사를 지배할 궁극적인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또 다른 이론은 ‘이해관계자주의’다. 이해관계자주의는 회사가 존속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주주, 노동자, 채권자, 공급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기여가 필요함을 전제로 하고, 주주 외의 이해관계자를 ‘비자본 투자자’라고 부른다. 주주뿐만 아니라 다른 이해관계자 도 회사에 기여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한 투자를 하지만, 회사가 망하면 그 투자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주의는 주주 이익만 추구하는 것보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공정하게 배려하는 것이 오히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이해관계자들 간 결합관계가 해체되면 회사의 효율성, 수익성, 경쟁력이 저해됨을 전제로 한다. 또 이해관계자들의 회사 충성도가 높아지면, 주주도 더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관계자주의는 회사지배구조의 중심문제를 회사이익의 공정한 배분으로 보고 이를 위해 절차적으로 공정한 의사결정과정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이해관계자주의는 이해관계자 간 이익분배의 결과를 수긍케 하는 보다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회사지배구조를 지향한다.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어느 한 집단만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다른 집단을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끌어내기 힘들 것은 분명하고, 그 조직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노동이사제는 이해관계자주의에 의하면 당연히 인정될 수 있는 제도다. 미국의 법학자 켄트 그린필드(Kent Greenfield)는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이사회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1)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이사회는 이윤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회사의 장기 존속에 도움을 준다.
2)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는 회사를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이는 회사의 생산성을 더 높이게 되어 결국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3) 다양하게 구성된 이사회는 회사의 의사결정능력을 증진시켜 회사의 장기 존속에 도움이 된다.
4) 다양하게 구성된 이사회는 경영자에 의한 단기 경영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상당하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면 의사 결정 절차가 늦춰지는 등 의사결정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거나, 자본조달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노동자 경영 참여는 노동자의 근무만족도를 증가시키고, 증가한 근무만족도가 생산성을 향상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경영참여로 인한 비용증가는 생산성 증가로 상쇄될 수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의 또 하나의 장점은 회사 정보에 정통한 노동자가 경영자의 직무수행을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재벌에 의한 독단적인 회사지배가 문제 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이사제는 경영감시수단으로 유용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노동자 경영참여는 공정성·효율성 관점 모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어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하여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많이 언급된다. 독일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의 경우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가 맡고, 업무감독은 감사회가 맡는 이원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고, 감사회에는 노동자 쪽 인사가 참여한다. 그러나 노사 간의 대립이 심한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을 고려하면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를 즉시 도입은 노사 간 대립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경제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주지상주의에서 이해관계자주의로 회사지배구조가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법칙은 회사의 경영자에게 노동자를 줄이고, 임금을 삭감할 것을 강요한다. 따라서 주주지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자 집단 간의 대립을 조장하고 상호불신의 근본원인이 된다. 반면 이해관계자주의는 이해관계자 간 신뢰를 회사관계의 근본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경직된 노사관계로 인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경제를 걱정한다. 그럼에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 희망적인 낙관일 수도 있지만 노동이사제는 극단적 대립관계에 있는 노사관계를 완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계기로 노동자 쪽은 강경일변도의 투쟁에서 벗어나 회사의 존속과 성장을 위한 협력적 파트너십을 사용자 쪽과 구축하고, 사용자 쪽은 노동자의 의사를 의사결정과정에 반영시키는 전향적인 결단을 해야 하며, 정치권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노·사·정을 아우른 ‘사회적 대타협’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이사제를 포함한 회사지배구조에 관한 심층 논의가 필요하고, 이번 논쟁이 그 기회가 될 수 있다. 노동이사제를 넘어선 새로운 회사지배구조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한다. 부디 이번 논쟁이 좌우 이념논쟁으로 흐르지 않고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손창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 칼럼은 필자의 책 「진보회사법시론」에서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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