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03 13:01
수정 : 2018.01.21 12:07
|
나와 어디든 함께 다니던 예삐. 우리가 10년간 함께 다닌 카페는 100곳이 넘는다.
|
[애니멀피플] 윤정임의 보호소의 별들 첫 회
10년 전 동물자유연대 첫 출근날 만난
분리불안으로 1년 반만에 파양된 예삐
|
나와 어디든 함께 다니던 예삐. 우리가 10년간 함께 다닌 카페는 100곳이 넘는다.
|
* 이 이야기는 ‘지독하게 힘든 개 키우기’가 아니라 작은 개 한 마리가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동물보호활동가를 만든 이야기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이 왔다. 집으로 돌아 왔는데 현관 앞에서 반겨야할 ‘예삐’가 보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이 방 저 방 빠른 속도로 예삐를 찾아 헤맸다. 따뜻한 바닥과 닿아 있는 큰 베개 밑에서 예삐를 발견했다. 싸놓은 대소변이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소울메에트는 엎드려 자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8월, 동물자유연대에 입사한 첫 날 예삐를 만났다. 작은 몸집에 귀여운 얼굴, 딱 봐도 정말 예쁜 개였다. 그런데 예삐는 이 날 입양간 지 1년 반 만에 파양이 되어 동물보호소에 다시 돌아 온 것이었다. 파양의 결정적인 이유는 애착하는 사람과 떨어지면 심하게 불안을 느껴 이상 행동을 하는 분리불안이었다. 매일 안약을 넣어야 하는 안구 건조와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는 지루피부염도 한 몫 했다.
첫눈에 반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녀석도 분리불안을 맘껏 표출할 애착 상대로 나를 찜한 듯 보였다. 그래 이것도 인연이다. 나는 첫 출근, 너는 파양된 날. 우리 함께 지내보자.
|
2007년 첫 만남. 우리는 서로 반했다.
|
“개 키워요? 동네에서 난리 났으니 빨리 해결하세요!” 7년간 자취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집주인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남겨진 예삐가 하루 종일 현관문을 긁으며 울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두꺼운 원목 옷걸이가 넘어져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집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화장실 변기 안에서 첨벙첨벙 물장구 치고 있는 예삐를 보니 ‘개 싸이코가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이젠 괜찮겠지’ 하다가 몇 번 더 호되게 당하고 난 뒤, 예삐는 나와 매일 출퇴근을 같이 했다. 관절이 안 좋아 걷는 것이 힘들어진 2년 전까지는 종일 그렇게 붙어 지냈다.
신혼여행, 해외여행을 제외하곤 예삐와 항상 함께 다녔다. 예삐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은 과감히 포기했고 때론 숨겨서 들어가기도 했다. 고급 레스토랑, 호텔, 노래방.…심지어 극장까지.
처음에는 예삐 혼자였다. 지독하게 돌보기 힘든 예삐와 살다보니 왠만한 개들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돌봄이 필요한 보호소 동물들을 한 마리씩 계속 데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아 손만 대도 물던 ‘켠이’가 왔고, 피부를 뚫고 진물이 철철 나던 중증 피부염 ‘대국이’가 왔다. 얼굴 한쪽이 뜯겨 구조된 떠돌이 개 ‘빽돌이’와 하반신 마비인 ‘땡군이’가 왔다. 푸대자루에 담겨 산 속에 버려 진 ‘랭이’도 왔다. 우리 집엔 늙고 병들어 입양 갈 확률이 5%도 안 되는 개들이 상시 7마리 이상 우리집에 있었다.
|
나이 들어 다리에 힘이 빠져 혼자 균형을 잡기도 힘들어했던 예삐.
|
같이 사는 동물들이 늘어도 예삐는 질투하지 않았다. 항상 첫째였고 항상 ‘갑’이라는 걸 녀석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예삐와 함께한 10년, 내 평생 가장 치열하게 살았고 제대로 일했다. 동물보호소 동물들의 나은 삶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했다. 좀 더 많은 동물들을 도와주기 위해 그들의 스토리를 대중에게 알렸다. 매번 고약한 입 냄새 풍기고 애교도 없는 늙은 개들 데려가도 나보다 더 좋아해주는 남자 사람 소울메이트도 만났다. 매 순간 예삐가 함께 했다. 나를 다독이고 단련시키며.
고마워 예삐. 너를 떠나 보내며 덜 아파하고 덜 미안해야 더 많은 동물들을 지켜주는 애니멀 호스피스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곁에 있을 땐 사랑 뿜뿜, 떠나 보낼 땐 조금 캐주얼하게 말이야. 너의 뿌리이자 나의 뿌리인 동물보호소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게. 친구와 동료였고 자식이고 가족이었던 내 소울메이트, 예삐.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