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6.14 19:36 수정 : 2018.06.14 20:20



원병묵의 물질로 읽는 예술
⑦ 샤갈과 스테인드글라스

샤갈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사랑과 화해를 끊임없이 시각화하며 순탄치 않았던 긴 생애와 화해했고, 거친 세상을 포용했다. 그는 작품에서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한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 사랑, 꿈을 이야기했다. 1985년 프랑스 니스에서 9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 그는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뛰어난 ‘색채 마술사’로 꼽혔다.

마르크 샤갈의 <미국의 창>(America Windows, 1977년) 전체 모습. 이 작품을 구성하는 3개의 창은 각각 2개의 패널로 나뉘어 있다.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 ?2018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ADAGP, Paris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프라우뮌스터 성당에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다섯 가지 색으로 성서 속 다섯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예수와 야곱, 모세 등 성서 속 인물들이 찬란한 색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색유리가 만드는 빛의 향연에 난 잠시 세상의 복잡함과 고단함을 잊고 흠뻑 빠져들었다.

투명한 유리에 색을 입힌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아름답고 밝은 색채로 유럽에선 11세기 중세 시대부터 성당과 교회의 창문 장식으로 널리 사용됐다. 변색이 적어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이 잘된 곳이 많다. 특히, 푸른색을 천상의 빛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 중요한 비중으로 사용했다. 유리 세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푸른빛은 점차 밝고 화려해졌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도안에 맞추어 색유리판을 자르고 조각을 무늬에 맞게 이은 다음 납으로 붙여 완성한다. 철, 구리, 코발트 등 금속 산화물은 유리에 넣으면 빛의 흡수를 조절하는 착색제가 된다. 푸른빛 유리가 푸르게 빛나는 건 햇빛에서 다른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면서 푸른빛만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최근엔 나노입자를 넣어서 색유리를 만들기도 한다. 금이나 은 나노입자를 유리에 조금 섞으면 나노입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색유리가 된다. 미세구조에서 색을 얻기도 한다.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몰포 나비의 날개는 금속처럼 밝은 푸른빛을 띤다. 몰포 나비 날개엔 푸른빛의 색소가 없는 대신 여러 층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된 미세구조가 있다. 한 층에서 반사된 푸른빛이 다른 층에서 반사된 푸른빛과 간섭을 일으켜 밝게 보이는 원리다. 다른 파장의 빛은 상쇄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색유리에 나노입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색유리의 색채는 물질과 빛의 상호작용 결과다.[1]

환대하지 않은 세상을 품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 비테프스크 지방의 한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0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지만, 파리의 주류 미술계는 현대 미술사의 정통파에 속했던 마티스나 피카소와 달리 러시아 시골 출신 유대인 예술가를 잘 받아주지 않았다.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았던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림으로 달래며 유년시절의 추억과 가족의 애틋함을 작품에 투영했다. 1915년 첫사랑인 벨라와 결혼한 후 그의 예술혼은 절정에 이르러 1920년대 가장 많은 회화 작품을 남겼다.[2]

그 또한 많은 예술가처럼 20세기 격변의 역사를 비껴갈 수 없었다. 1940년 6월 파리가 나치에게 함락당하자 프랑스 미술가들의 망명이 줄을 이었고, 유대인이었던 샤갈 부부도 1941년 뉴욕으로 이주한다.[3, 4] 탈출의 기쁨도 잠시, 1944년 아내 벨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절망이었다. 벨라의 죽음으로 그는 더는 혁신적인 회화 작품을 그려내지 못한다. 1952년 재혼으로 겨우 안정을 되찾은 이후 그는 회화가 아닌 스테인드글라스와 공공 미술에 힘쓴다. 꿈을 꾸듯 환상적인 색채로 사랑과 기쁨을 표현한 초기 회화 작품 스타일은 후기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1970년에 만들어진 프라우뮌스터 성당의 작품 역시 이 무렵 작품이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사랑과 화해를 끊임없이 시각화하며 순탄치 않았던 긴 생애와 화해했고, 거친 세상을 포용했다. 그는 작품에서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한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 사랑, 꿈을 이야기했다. 1985년 프랑스 니스에서 9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 그는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뛰어난 ‘색채 마술사’로 꼽혔다.

샤갈의 <미국의 창> 중에서 음악과 미술을 형상화한 왼쪽 창문. 시카고 미술관 소장. ?2018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ADAGP, Paris

왜 샤갈의 인물들은 둥둥 떠다닐까

이번 글에서 독자들과 함께 자세히 보고 싶은 작품은 1977년 완성된 <미국의 창>(America Windows)으로, 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샤갈은 이 작품을 미국 독립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피난처를 제공해준 미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의 화려한 색채와 동화적 상징이 돋보이는 회화적 특징이 잘 반영된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밝은 빨강, 오렌지, 노랑, 녹색의 화려한 색채를 띤 인물과 사물이 푸른빛의 밝은 바탕과 어우러진다. 마치 사람과 사물이 깊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밝고 따뜻한 푸른빛은 생기 넘치는 상징들을 감싸며 세상과 화해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두 개의 패널로 나뉘어 있는 세 개의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여섯 개의 패널에는 시카고의 스카이라인 위로 음악, 미술, 문학, 건축, 춤, 극장이 차례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미국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그림 1). ‘음악’과 ‘미술’을 형상화한 왼쪽 창문(그림 2)을 좀 더 살펴보자. 음악을 상징하는 첫 번째 패널 가운데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가 있고, 오른쪽 위엔 나팔을 부는 사람이 있다. 왼쪽 상단에는 악보가 보인다. 두 번째 패널은 ‘미술’을 상징한다. 위에는 붓, 캔버스, 팔레트가 보이며, 아래엔 병, 음식 그릇, 정물의 일부가 되는 사물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화려한 색유리로 디자인된 창문을 통해 인류의 창의적 에너지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5]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은 중력을 무시한다. 인물과 사물이 건물 위와 하늘에 떠 있는 채로 그리는 스타일은 그의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고향 러시아에 대한 향수 때문인데,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추억 어린 고향으로 가고픈 소망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그의 작품에 염소, 말, 연인, 태양, 새, 꽃의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또한 고향 러시아의 민속과 종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술, 예술의 완성을 돕다

샤갈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활용한 후기작품에서 자신만의 회화 기법을 유리 위에 재현하기 위해 유리 가공 기술자와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는 <미국의 창>을 제작할 때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색감을 살리기 위해 유리 가공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전통적인 유리 제조법을 되살렸다. 투명한 유리는 규소가 주성분이다. 규소는 상온에서 결정 구조를 이루지 않는 비정질 재료로서 빛을 흡수하지 않고 대부분 투과시킨다. 그는 독특한 그만의 색채를 살리기 위해 투명한 유리 위에 색유리를 얇게 입힌 ‘플래시드 글라스’(flashed glass, 입힌 유리)를 사용했다. 입힌 유리는 투명한 유리 위에 색상을 가진 얇은 색유리가 겹쳐 반투명하다. 전체를 색유리로 만드는 것보다 투명 유리 위에 얇은 색유리를 입히면 비용이 저렴하고 다루기가 쉽다. 입힌 유리는 에칭 작업으로 표면에 있는 색유리 부분을 제거하여 다양한 색조와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5]

작업 과정을 살펴보자. 시카고 미술관이 제작한 동영상[6]을 보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지 전문가들이 그의 작품을 조사해 밝힌 대목이 있다. 먼저 수채화 물감과 구아슈(수용성의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를 사용해 밑그림을 만든다. 그다음 밑그림대로 유리 위에 스케치한 후 유리를 개별 조각으로 절단한다. 그는 여기서 전통적인 유리 제조법을 사용하는데, 투명 유리에 색상을 결정하는 금속 산화물을 입힌 색유리를 산으로 세척하여 색조와 색상의 그러데이션(gradation·농담)을 조절한다. 이렇게 완성한 다채로운 색유리 조각을 원래의 밑그림대로 이어 붙인다. 마지막으로 조립된 유리 위에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손톱과 붓으로 자국을 남기는 독특하고 최종적인 터치를 추가해 작품을 완성한다.

샤갈은 오랜 생애에 걸쳐 사랑과 화해를 끊임없이 추구한 예술가였다. 가난하지만 선한 아버지 영향 아래 예술가의 꿈을 키웠고,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의 소중함을 지켜내며 모진 세월을 견뎠다. 중력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연인처럼 자유롭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삶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긴 세월, 고단한 삶을 이겨내고 마침내 세상을 품었던 샤갈의 빛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참고 자료]

[1] 석현정 외, <빛의 공학>(사이언스북스)

[2] 이진숙, <위대한 미술책>(민음사)

[3] 할 포스터 외,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4] J.-B. Michel, et al. Science 331, 176-182 (2011)

[5] http://www.artic.edu/aic/collections/citi/resources/Rsrc_002585.pdf

[6] https://www.youtube.com/watch?v=Bz2mioCp-M0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원병묵의 물질로 읽는 예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