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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9 19:32 수정 : 2018.08.09 20:07

원병묵의 물질로 읽는 예술
⑨파울 클레와 자기조립

클레는 그림을 그릴 때 처음엔 어떤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러 형태를 서로 조합하며 새로운 형상이 저절로 발현되도록 기다렸다. 의미 있는 형상이 될 것 같으면 색채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는 이렇게 작업하는 과정이 자연에 더 충실하다 믿었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형태가 작가의 개입으로 점차 의미 있는 형상으로 재조립되어 현실적 또는 환상적 주제로 재탄생했다.

파울 클레 <호프만 이야기>(Tale ? la Hoffmann). 1921년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2018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활기찬 뉴욕에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동하는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 뉴욕 방문 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을 들렀다. 지난 1월 스위스 베른을 방문했을 때 스위스가 사랑하는 화가이자 음악가인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작품을 본 후로 그의 작품을 더 보고 싶었다. 그의 작품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클레는 1879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나 음악가 부모 덕분에 일찍이 바이올린 연주를 배웠다.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지만 19살 때 독일 뮌헨 미술학교에서 상징주의 대가인 프란츠 폰 슈투크를 만나 미술로 전향했다. 1912년 33살에 파리에서 접한 입체파 실험에 큰 감명을 받아 다양한 형태 실험에 몰두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의 영향으로 색채에도 눈을 떴다. 1921년부터 1931년까지 평생 친구였던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교육과 작품 활동에 주력했다. 1931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학교 교수가 되지만 예술의 자유를 억압했던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3년 스위스 베른으로 돌아온다. 1940년 61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스위스에 머물며 일생 동안 9천 점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에 널리 걸쳐 있다.[1]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과 음악의 조화

그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작품 몇 개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두 작품을 정해 조금이나마 살펴보려 한다. 첫번째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것으로 1921년 제작한 <호프만 이야기>(Tale ? la Hoffmann)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채색으로 자신을 표현하려 애썼던 시절이다. 전쟁 전 그의 초기 작품은 무채색이 대부분인데, 그는 전쟁을 겪은 후 채색을 활용해 생명력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판지 위에 금속 호일로 테두리를 두르고 종이 위에 수채물감, 흑연, 인쇄용 잉크를 사용하여 제작했다. 이 그림은 독일 낭만주의 작가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E. T. A.) 호프만의 대표작 <황금단지>(The Golden Pot, 1814년작)의 줄거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현실의 경계를 넘어 장르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황금단지>는 낭만주의 중편 예술 동화에 속한다. 클레는 호프만을 좋아해 그에겐 ‘고스트 호프만'(호프만의 유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림 속 이야기는 독일 드레스덴을 배경으로 한다. 순진하고 가난한 대학생 안젤무스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마술 세계로 빠져든다. 그는 마술 세계에 있는 백합 꽃향기 그윽한 나무 그늘에서 작은 뱀 세르펜티나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현실의 역경을 극복한 후 세르펜티나와 결혼하여 이상의 세계인 아틀란티스로 떠난다. 세르펜티나가 아틀란티스로 가져온 황금단지는 우주의 신비를 간직한 보물이었다. 클레는 그림 속 형상으로 이런 동화 이야기를 집약해 표현했다. 그림 왼편에 안젤무스가 처음으로 운명의 소리를 듣는 나무를 배치했고, 오른편에 주인공이 잠시 갇혀있던 유리병을 그렸다. 중앙엔 백합과 황금단지를 나타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스러운 상상력과 음악의 리듬을 타는 듯한 색채는 클레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이다.[2]

파울 클레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전시>(Bauhaus Exhibition Weimar 1923).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2018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VG Bild-Kunst, Bonn

두번째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한 그림으로 클레가 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회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만든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전시>(Bauhaus Exhibition Weimar 1923) 그림 엽서다.[3] 그는 동료인 칸딘스키와 함께했던 바우하우스의 삶을 즐겼다. 같은 스승에게 배운 칸딘스키와 사이가 좋아 추상화와 색채 탐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예술을 교육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여유도 있었다. 그가 전통적인 형태와 색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바우하우스 시절 동안, 학교는 그의 예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전위적 예술 학교였다. 우수한 학생들과 학자들이 바우하우스를 찾았다. 색채 구성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추구하자는 생각이 당시 바우하우스에서 울려 퍼졌다. 사실 처음에 클레는 색을 사용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다.[4] 그러던 그가 바우하우스의 분위기에 힘입어 그린 이 시기 그림들은 활기찬 유머를 발산하며 긍정적인 상징으로 가득하다. 1923년 바우하우스 최초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교사와 학생이 직접 홍보용 엽서를 제작했는데 클레는 석판 인쇄로 제작한 엽서에서 기발한 생물들이 리듬감 있는 퍼레이드를 펼치는 형상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클레는 일생 동안 예술적 자기 인식의 긴 과정을 거쳤다. 미술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해 회화적 실험을 평생 수행하며 자기만의 예술을 천천히 강화시켰다. 그의 실험 정신은 9000점이 넘는 작품 속에 살아 있다. 그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애썼다. 신문지, 판지, 천, 붕대 등을 캔버스 대신 썼으며 유채, 수채, 파스텔 등 다양한 미술 재료를 자유롭게 활용해 작업하길 좋아했다. 그가 활용한 재료는 일상에서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클레는 어떻게 작품 속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을까?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처음엔 어떤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러 형태를 서로 조합하며 새로운 형상이 저절로 발현되도록 기다렸다. 의미 있는 형상이 될 것 같으면 색채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는 이렇게 작업하는 과정이 자연에 더 충실하다 믿었다. 낙서처럼 시작한 그림이 자연적으로 나름대로의 법칙을 따라 성장하여 생동하는 형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형태가 작가의 개입으로 점차 의미 있는 형상으로 재조립되어 현실적 또는 환상적 주제로 재탄생했다. 그는 예술 사조나 재료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다양한 실험을 즐겼다. 그의 예술 실험은 다작의 원천이었다.

생동감의 근원, 자기조립

클레의 예술 실험은 분자를 조립하여 유용한 물질을 합성하는 과학 실험의 접근 방법과 비슷하다. 생체 분자를 적절히 조합해 생명의 근원을 밝히고 새로운 인공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현대 과학의 ‘합성생물학’이 연상된다. 최근 개발된 유전자 가위 기술이 생물학과 의학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지만 과학은 아직 분자를 조립해 생명을 합성하지 못한다. 클레는 예술 작품에서 형태와 색상을 조립해 대상을 살아 있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과학에서 물질을 합성할 때 ‘자기조립’(Self-assembly)이라는 원리를 활용한다. 사물을 구성하는 분자는 저절로 특정한 나노 구조를 형성한다. 실제 자연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방식도 자기조립 과정이다. 클레의 작품에서도 처음의 무의미한 형태와 색채가 점차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력을 가진 대상으로 되살아난다.

클레는 현실의 장벽을 넘어 아이와 같은 천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좋아했다. 그는 형태의 자발적 조립과 채색의 생동감을 중시했다. 그에게 색은 생명을 의미한다. 색은 어둠과 싸우는 활기찬 에너지다. 분자가 스스로 조립해 생명체를 형성하듯 선과 색이 어우러져 생명력을 가진 생명체로 재조립된다. 클레 작품에서 생동감이 가득한 이유는 스스로 조립하는 생명 형성의 원리가 그의 그림에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참고 자료]

[1]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3143

[3]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67177

[4] P. Ball, Nature 425, 90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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