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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9 06:00 수정 : 2018.11.09 19:14

원병묵의 물질로 읽는 예술
⑫ 백남준과 브라운관

젊은 백남준에게 브라운관은 상업화된 문화의 상징이며 비인간화된 기술을 풍자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매체였다. 다만 예술가로서 과학과 기술을 섭렵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젊은 그는 물리학과 전자공학에 그의 재능을 기꺼이 할애하기로 결심하고 비디오 전문가 슈야 아베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나 기술자와 협업하며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그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현대 음악을 전공했고 1958년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의 공연을 접하며 실험적 예술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961년부터 조지 머추너스와 조지프 보이스와 함께 ‘플렉서스’ 운동을 주도했다. 라틴어로 ‘흐름’을 뜻하는 플렉서스는 예술의 사유화와 상업화에 반대하여 작품과 작가의 삶을 공유하는 예술 운동으로 “목적이 없는 자유와 실험을 위한 실험”을 추구했다. 백남준은 1960년대 초반 독일 가정에 보급된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작품의 매체로 착안하여 음악과 비디오를 결합한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개척했다. 1964년 뉴욕으로 이주 후 2006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1,2]

미디어 아트, 예술의 본질을 묻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로비를 지나 전시관으로 안내하는 램프코어 공간에서 거대한 브라운관 탑을 볼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1003개의 모니터를 5층 높이로 쌓아 설치한 거대한 작품 <다다익선>이다. 실제 설계와 설치는 건축가와 공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현대 미디어 아트를 대표하는 <다다익선>은 2003년 브라운관을 전면 교체하는 대대적인 보수에도 불구하고 브라운관 노후와 안전 문제로 현재 가동이 중단되었다.

브라운관 수명 문제는 브라운관 산업의 역사와 직결된다. 나는 한 전자회사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브라운관 성능과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부품인 산화물 음극 개발에 참여했었다. 독일 물리학자 아르투어 베넬트가 1904년 개발한 산화물 음극은 대표적인 전자빔 발생 장치로서 대부분 브라운관에 탑재되어 있다.[3] 전자빔이 화면에 도달하면 화면에 도포된 형광 물질과 반응하여 색채를 재현한다. 전자빔이 화면까지 도달하는 궤적은 전자석으로 정교하게 조정한다. 이것이 브라운관의 기본 원리다. 브라운관이 볼록한 이유는 전자석이 전자빔을 휠 충분한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브라운관 성능과 수명은 산화물 음극과 브라운관 진공도가 결정한다. 전자는 공기 분자와 부딪혀 산란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브라운관은 높은 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브라운관의 가격과 성능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려면 값싼 재료로 더 높은 성능을 얻어야 했는데 이는 수명에 불리했다. 난 성능을 극대화한 산화물 음극을 개발하면서 브라운관 수명을 예측하는 수학 모델도 함께 개발했다.[4] 나는 브라운관 기술 개발의 마지막 세대였다. 액정 소자나 유기 발광 소자 등 고성능 미디어 소자가 등장하면서 브라운관 산업은 퇴보를 거듭해 기술 개발과 생산이 중단되고 결국 시장에서 점차 사라졌다. 초기 미디어 아트 작품에 사용하는 브라운관 모니터도 대부분 단종될 수밖에 없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 1988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은 예술 작품의 탄생과 죽음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브라운관은 소모성 매체로서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수명을 다하면 기능을 멈춘다. 미디어 아트의 숙명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미술계에선 이미 단종된 브라운관을 계속 사들여 보수하거나, 다른 현대적 미디어 매체로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는 원래부터 수명이 고정된 전자 매체를 탑재한 작품이기에 액정 소자 등 다른 모니터로 바꾸는 것이 작품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미술계의 반론도 나오고 있다. 미디어 아트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술계에서도 고민하는 문제다.

본질적으로 작품 설치와 해체는 미디어 아트가 풀어야 할 필연의 질문이다. 지난달 익명의 예술가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된 직후 미리 설치한 분쇄 장치를 원격으로 작동시켜 자신의 작품을 훼손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예술의 상업화에 맞선 그의 의도적인 훼손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백남준의 <삼원소>(Three elements). 2000년 작. 백남준 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예술과 과학을 이어준 모험가

백남준에 대한 과학계의 평가는 어떨까. 과학 저널 <네이처>는 그의 작품에 대해 2000년과 2005년 두 편의 사설을 실었다.[1, 2] 둘 다 예술 역사가 마틴 켐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가 기고했으며 2000년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됐던 (현재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소장한) <삼원소>에 관한 작품 해설과 평가다. 백남준이 레이저 전문가인 노먼 밸러드와 협업한 미디어 작품 <삼원소>는 물, 불, 흙을 상징하는 삼각형, 원형, 사각형의 세 기하학적 형상으로 구성돼 있다. 레이저, 거울, 프리즘, 모터, 연기를 활용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현대 물리학 기술을 활용하여 고대 원형을 우주의 무한 공간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새천년을 맞는 인류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켐프는 이 작품에서 백남준 예술의 핵심을 “예술과 과학의 접목으로 완성한 종합 예술”이라고 봤다. 특히 백남준은 브라운관을 자신의 캔버스로 사용해 기존 예술의 한계를 과감히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그로 인해 백남준의 예술은 캔버스의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잭슨 폴록처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대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백남준에게 브라운관은 상업화된 문화의 상징이며 비인간화된 기술을 풍자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매체였다. 다만 예술가로서 과학과 기술을 섭렵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젊은 그는 물리학과 전자공학에 그의 재능을 기꺼이 할애하기로 결심하고 비디오 전문가 슈야 아베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나 기술자와 협업하며 자신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했다. 그는 브라운관 기술에도 능숙해져 자석을 사용하여 화면의 구성을 오실로스코프 파동과 유사한 특이한 기하학 모양으로 바꾸기도 할 정도였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협업을 완성한 진정한 모험가였다.

켐프는 “예술과 과학은 자연에 대한 직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깊은 탐구는 예술과 과학 모두에게 유익하다. 과학에 대한 심오한 상상력을 가진 예술가와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는 데 창조적 본능을 사용하는 과학자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백남준의 <삼원소>에서 이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형상 내부에서 레이저의 끝없는 리바운드를 통해 무한의 우주 영역에 도달한다. 우주에서의 빛에 대한 그의 시각화는 물리학자와 천문학자에게 매우 친숙한 주제이다. 예술가와 과학자가 직관적으로 발견하는 자연 속의 흐름과 패턴은 수없이 많다. 난기류나 자기조직화 형상, 물방울의 복잡한 움직임 등 자연과 물질에 내재한 수학적 본질과 아름다움은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이어준다. 자연에 대한 깊은 탐구는 예술과 과학 사이의 대화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동안 연재에서 예술과 과학의 관계를 잇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다. 둘 사이에서 너무 조심스럽기도, 때론 너무 과감하기도 했다. 과학자로서 예술을 해석하는 작업은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었다. 연재를 마치며 과학과 예술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남는다. 예술과 과학 둘 사이에 작은 파동을 일으켜 반응을 촉진할 수 있다면 이 모험이 절대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끝>

[참고 자료]

[1] M. Kemp, Nature 404, 546 (2000)

[2] M. Kemp, Nature 434, 308-309 (2005)

[3] G. Gaertner and D. den Engelsen, Applied Surface Science 251, 24-30 (2005)

[4] B. M. Weon and J. H. Je, Applied Surface Science 251, 59-63 (2005)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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