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칼럼
무능하기 짝이 없는 김영삼 정권이 외환위기를 불러들였을 때, 우리는 그 날벼락 맞은 상황을 ‘6·25 이후 최대국란’이라고 부르기로 단숨에 합의하고 동의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고 말았다. 그 사태에 맞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평소에 말했던 것처럼 북한을 향해 ‘선제공격’이나 ‘선별폭격’을 감행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 사태는 ‘6·25를 압도하는 단군 이래 최대 국란’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당하고만 있지 않고,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싸움의 상식에 따라 남쪽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을 것이고, 남쪽 또한 같은 논리로 공격으로 맞섰을 것이다. 전쟁은 곧 전면전으로 불붙고, 우리는 제2의 6·25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6·25 정도의 전쟁일까? 그렇지 않다. 20세기의 가장 잔인한 전쟁이란 베트남전쟁은 8년 동안에 180만명이 죽었다. 그런데 우리의 6·25는 단 3년 동안 300만명이 죽었다. 그랬는데, 지금 남북한의 병력은 그 때보다 10배, 화력은 100배로 확대되어 있다. 그럼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죽게 될 것인가 ….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선별공격’ 발언을 했을 때 이 땅에서는 반전평화운동이 일어났다. 실상사 도법 스님이 깃발을 올린 그 운동은,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상을 살 만큼 산 지식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휴전선에서 인간띠를 만들어 반전을 외치며 죽어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그 운동에 동참하고 지지 칼럼도 썼다. 남다른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손자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떠밀었다. 큰 손자가 어느덧 내가 6·25를 당했던 그 나이 일곱살이다. 내가 죽어 전쟁을 막아야지, 어찌 그 애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겠는가. 이런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들이 나뿐이랴. 몇 만명이 반전을 외치며 맨가슴으로 총알을 막고 죽어가는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에 보지 않았는가? 팔레스타인 수 백명이 인간방패를 만들자 이스라엘군마저 공격을 못했던 것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의 위기 상황이 천만다행하게도 이성적 처리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각국의 외교 고수들이 수 없이 회의와 회담을 했지만 계속 꼬이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상호 불신 때문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의 길은 딱 한 가지다. 북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북의 안녕을 위해, 민족 전체의 공존을 위해,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일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미국은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북은 핵을 포기하며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고, 핵비확산조약에 복귀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은 모든 경제 제재를 풀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정식 수교를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협정에 따라 남과 북은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병력을 감축해야 한다. 소설가가 순진하게 소설 쓴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인간사가 능란한 술수 가지고 얼마나 풀리던가. 인간사를 쉽게 풀어가는 열쇠는 불신을 넘어서는 상호신뢰였다. 서로 믿으면서 그 모든 것을 일괄타결해야 한다. 진정성은 핵보다 강하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정치 하는 분네들은 여·야가 따로 없이 눈 부릅뜨고 핵문제 해결에 일심단결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을 확보하고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국가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여당·야당이 하찮기 그지 없는 일로 다툼질만 하고 있으니 관계국들이 한국을 얼마나 경시하고 비웃을 것인가?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