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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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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칼럼
날마다 신문 지면에 넘쳐나고 있는 대선 예비후보들의 이야기가 이제 지루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신문들도 참 염치 없고 너무들 한다. 그게 무슨 기삿거리가 되고, 유식한 말로 국민의 알권리가 된다고 지지율 1%도 못 되는 예비후보들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들춰가며 아까운 지면을 몇 페이지씩 채우고 있는가. 대선 기사는 각 당에서 후보들을 확정한 다음부터 보도해도 늦지 않다.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면 ‘국민의 몰라도 될 권리’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조명해야 될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모적인 기사로 값비싼 종이 없애가며 지면을 낭비하고 있는가. 국민들은 정치에 신물난 지 오래고 정치인에게 절망한 지 오래다. 그런 답답한 상황 속에서 장마구름을 뚫고 비치는 햇살처럼 밝고 선선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해초로 종이를 만들어 낸다는 소식이다. 나라 다스리는 대통령 뽑는 얘기 제쳐 놓고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대통령 뽑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대통령은 누구나 자칫 잘못해서 나라를 망칠 수도 있지만 해초로 종이를 만드는 신기술은 영원히 우리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초 중에 붉은 색을 띠는 홍조류인 우뭇가사리나 풀가사리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정보통신(IT) 산업 못지않게 소중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가 최초로 발명해 전 세계를 상대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둘째 무한한 바다의 힘으로 속성재배한 원료를 쓰기 때문에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산림을 훼손하지 않게 된다. 셋째 목재종이가 표백 과정에서 다이옥신을 발생시키는 반환경 산업인데 비해 해초 종이는 전혀 그런 것이 없는 친환경 산업이다. 넷째 제조 과정이 간편해 목재 종이보다 값이 싸다. 다섯째 해초 종이는 목재 종이보다 그 구조가 치밀하고 인장 강도가 높아 훨씬 질기고 인쇄 효과도 뛰어나다. 이 얼마나 황홀한 발명이고 환상적인 발명품인가. 인간으로서 우주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받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류의 미래가 대강 3천년일 거라고 예측했다. 3천년 뒤에 인간들은 지구에서 멸종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물론 인간의 문명 발달에 따라 인간들이 일으킨 각종 공해 때문이다. 그 공해들의 총체적 명칭이 ‘지구 온난화’다. 그런데 호킹의 섬뜩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동차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어느 나라도 공해를 줄일 노력을 하지 않는다. 60~70년밖에 못 사는 인간들에게 3천년은 한도 끝도 없이 길게 느껴지고,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는 그 인간의 이기심이 합해져 그렇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온난화 해결의 유일한 공헌자가 있다. 나무숲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나무숲은 날로 늘어나는 종이 수요에 따라 1초마다 축구장 넓이만큼씩 없어져서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기술이 막대한 산림 훼손을 막아내게 된 것이다. 그 인류사적 공헌과 함께 전보다 더 질 좋은 종이를, 값싸게 세계에 공급하게 되었으니 돈을 벌어들여도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가. 충남대 서영범 교수팀에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다. 나는 서재에 원고지를 키 높이로 쌓아 놓는 버릇이 있다. 그래야 포만감이 생기고 글을 쓸 욕구가 동하기 때문이다. 어서 해초 종이가 대량 생산되어 원고지를 수만 장 쌓아놓고 싶다. 거기서 바다 내음이 그윽하고 아슴하게 풍겨올 것이다.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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