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20돌 끝나지 않은 6월
1부- 1987, 그후 20년 ③ 다큐6월
박종철 죽음은 완전 조작…고문살인한 놈들 더 있어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축소·조작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부영(65) 전 의원의 ‘옥중메모’(사진)의 전문이 10일 처음 공개됐다.
이 메모는 당시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 전 의원이 1987년 2~3월 몰래 작성한 뒤 교도관을 통해 외부로 내보낸 것으로, 5월18일 김승훈 신부가 폭로해 6월 항쟁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87년 당시 이 메모를 전달받아 사제단에 전달한 김정남(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씨는 이 문건을 공개하면서 “일부 설명이나 각주 등을 붙인 뒤 곧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해 영구보관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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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메모’ 첫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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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 도움 얻어 교도소 담장 넘어
군사독재 허물어뜨린 ‘역사의 힘’으로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되기 20여일 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5·18 6주년 기념 미사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충격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군사독재의 정당성을 바탕부터 허물어버린 김 신부의 폭로는 ‘이부영 메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은 2월23일부터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작성한 편지 형식의 메모를 친구인 김정남씨(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 앞으로 내보냈다. 메모는 모두 4통이지만, 핵심 내용은 2월23일과 3월1일치에 들어 있다. 이 전 의원은 박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구속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가 1월18일 같은 교도소의 격리사동에 수감되면서 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이 전 의원이 “화장실에서 용변 뒤에 사용하는 누런 갱지, 재소자용으로 쓰이는 ‘우편대체납입원부’ 용지 등을 구해 볼펜으로 급하게 작성했다”는 메모는 한재동 교도관→한 교도관과 친한 전병용 전 교도관을 거쳐 당시 수배돼 있던 김 전 수석에게 어렵게 전달됐다. 메모에 사용된 종이와 ‘모나미 볼펜’은 한 교도관이 이 전 의원에게 몰래 건네주었던 것이다. 이 메모들에는 △이미 구속된 경관 두 사람 이외에 박군 고문치사에 직접 가담한 경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 △황정웅 경위 등 경관 3명의 실명 △경찰을 통한 금전적 보상 제안 등 정권 차원의 끈덕진 은폐 시도가 담겨 있다. 김 전 수석은 이 메모를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를 통해 사제단에 전했고, 김 신부가 5월18일에 발표한 성명서 초안도 자신이 직접 써서 건넸다. 김 전 수석은 메모 전문을 공개하면서 “조·강 두 경관이 이 전 의원과 같은 사동에 수감된 것이나 이 전 의원을 잘 아는 한재동 교도관이 그때 그곳에 있었던 것, 당시 수배중이던 전 전 교도관이 그 편지를 나한테 전해주고 불과 이틀 뒤 체포된 사실 등을 생각하면 메모가 전달된 것 자체가 역사의 힘이랄까, 어떤 오묘한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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