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31 17:54
수정 : 2018.05.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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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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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성년 남자가 다짐하는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담배 끊는다는 것이다. 젊은 기자 시절(1961~73)의 기억을 되살리면 새해의 금연 다짐은 열에 아홉 실패로 끝났다. 금연 운동이 요란하지 않았던 데도 원인이 있겠으나, 단조한 그날그날의 삶에서 담배 피우는 행위가 중요한 항목이었던 게 지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생활의 일부’였던 것인데, 아침밥을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어야 일이 손에 잡히는 정도라면 제3자는 고사하고 가족도 이러쿵저러쿵할 문제가 아니었다.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들고 문자판을 두드리는 세상과는 아주 다른 것인데,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생활인지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한다. 일흔다섯 살의 나는 아직도 담배를 태운다. 고혈압 처방전을 써주는 의사에게는 물론 비밀이다.
새해에는 무엇인가 꼭 이뤄보겠다는 결심은 어떠했을까.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20~30대의 나는 매해 정월 초하루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일기를 쓰겠노라고 작심했으나 번번이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실패로 그친 개개인의 사사로운 결심은 사람 따라 천차만별이다. 제쳐놓기로 하면 결국 우리의 관심은 생활인 다수의 공통된 새해 결심으로 모아진다.
이 경우 생활인 다수의 새해 다짐은 비록 사적인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이미 사회적 지향을 지닌다. 이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실현될 수 있게 돕는 것이 공공 영역으로 옮겨감은 자명하다. ‘공공영역’이란 표현이 정당, 입법부, 행정부를 포괄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영리적 시민단체와 느슨한 형태의 각종 정치·사회 결사들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후자야말로 오늘 우리 사회에서 생활인의 희망과 꿈의 첫 단추를 끼우는 선구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새해에 거는 많은 생활인들의 꿈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나 2010년 초가을에 이르러 보통시민층 혹은 생활인들의 모임들이 색다른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성근이 이끄는 ‘유쾌한 백만 민란’은 그 이름처럼 폭력이나 유혈과는 거리가 먼 웃음의 잔치를 벌이는 데 성공한 것이 그 첫 사례다. 11월 중순 120년 전 동학 농민군의 유서 깊은 전북 우금치에서 20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기세를 올린 며칠 뒤 다시 충남 천안에서 대중을 동원했다. 12월 중순에는 보수의 아성 대구에서 200명의 열성적 회원이 가입하는 이변 아닌 이변을 창출했다. ‘유쾌한 백만 민란’이 서민경제를 앞세우고 2012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합치자는 주장을 내세운 것은 투박하긴 하지만 생활인의 희망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주권재민의 민주사회 원리를 바로 행사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12월29일 서울와이더블유시에이(YWCA) 강당에서 열린 진보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 성격의 정당과 사회단체 회원들을 불러 대동한마당을 벌이고 송구영신의 본뜻을 새긴 것이다. 조성우 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는 단상 단하의 구별을 없애고, 넥타이를 맨 사회자가 아니라 전통 신앙인 차림의 시인이 나와 발언자를 호출해 본심을 토로케 한 방식은 전례 없었던 일로서 신뢰구축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사람 모임 형식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모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전후하여 사분오열된 동독의 반체제 운동가들이 원탁회의를 기본으로 하는 ‘노이에스 포룸’으로 일관했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주목할 모임이 12월29일에 있었다. 진보와 보수로 확연히 구분되는 개신교와 불교의 지도자 그리고 재야 원로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 전쟁방지와 평화정착을 위해 남과 북이 서로 자극하는 일체의 공격적 군사행동과 도발적 언동의 중지”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한 것이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이후 처음 듣는 평화의 메시지다.
새해 아침의 꿈이 있다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날에도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다.
임재경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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