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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15일 발간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월간지 <말>은 ‘민주 민족 민중언론의 디딤돌’을 표방하며 기존 제도언론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였다. 사진은 미문화원에서 기습농성 중인 대학생들의 사진을 내건 창간호 표지.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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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태림-멈출 수 없는 언론자유의 꿈 (91)
1985년 6월15일 <말> 창간호 표지 맨 위에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민주 민족 민중언론의 디딤돌’ 표어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회원들이 추구해온 언론관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민족자주에 대해서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민중언론에는 <말>이 사회현상과 사건을 대할 때 “늘 민중의 눈으로 보고, 민중의 귀로 듣고, 민중의 입이 되라”는 명령어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왜 ‘디딤돌’인가? “지금은 민언협에서 잡지에만 도전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민중신문, 민중방송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가 깃든 표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창간호부터 <말>을 회원들에게만 무료 배포하는 기관지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판매하는 월간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고 송건호 민언협 의장은 창간사에서 “말다운 말의 회복, 이 명제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다수의 민중들에게 절실한 염원이다. 오늘의 우리 말은 본래의 건강성을 오염시키는 무리들에 의해 있어야 할 자리를 올바로 찾지 못한 채 심각히 표류하고 있다. 거짓과 회의, 유언비어가 마치 이 시대를 대변하는 언어인 양 또 하나의 폭력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본다”, “월간 <말>은 어느 누구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며 오직 민족과 국가의 역사적 발전적 시각을 대변하는, 문자 그대로 공공기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사무국장을 맡은 그해 말까지 <말> 4호(12월20일)를 발간했는데, 기존의 모든 제도언론들에 비해 취재 대상과 주제를 달리했다. 기사 제목만 봐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새로운 언론기관의 창설을 제안한다’, ‘출판탄압, 현대판 분서갱유’, 언론기본법은 폐기되어야 한다’(창간호), ‘창작과비평사 폐쇄의 교훈과 과제’, ‘교회, 여성, 청년단체들의 텔레비전(TV) 시청료 거부운동 추진’, ‘제도언론, 대학생에게 외면받고 있다’라는 주제는 당시 어떤 제도언론도 다루지 못하던 주제였다. 민족 자주의 문제는 어떠했는가? 제도언론들이 대학생들의 ‘미 문화원 점거농성’(5월23~26일)을 일제히 ‘반미’로 몰아갈 때 ‘말’은 창간호에서 “미 문화원 농성이 의미하는 것-광주의 비극은 누구 책임인가?” 기사와 “광주사태에 미국은 책임없다?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 책임회피 발언”을 실었다. <말>은 민중생존권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었다. “경제성장인가, 외채성장인가”, “대학 출신 노동자는 불순세력인가”, “노동현장이 격동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파업, 어떻게 볼 것인가”, “외국 농축산물에 침몰하는 농촌”, “누구를 위한 도시개발인가”, “어느 목동 아줌마의 서울 행적”(창간호), “대우어패럴 동맹파업 왜 일어났나?”, “소 값 폭락 항의시위 전국으로 확산”, “농민은 선진조국의 머슴인가?”(2호·8월15일), “외자도입 수출주도 성장정책, 정치적 폭압으로 귀착”, “우리가 일군 간척지 왜 빼앗으려 하나-서산 홍성 간척 농민들 불하 요구”, “소작농이 크게 늘고 있다, 비농민 부재지주 소유가 60%나”(제3호·10월15일) 등의 기사가 그것이었다. 인권문제로는 ‘민청련’의 고 김근태와 이을호 고문사건을 계기로 “고문 용공조작 저지운동 적극 전개”와 “인류문명의 암, 고문”(제4호)을 통해 정면으로 비판했다. ‘민중교육 사건’에 연루된 민주화운동 교사들과 지지 학생들도 <말>은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민중교육> 관련 교사들에 보내온 제자들의 편지”와 “<민중교육>, 무엇을 말했나?”(제3호), “법정에 선 교육-<민중교육> 사건 재판 참관기”(제4호)를 실어 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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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보(필명 이룰태림·71) 희망래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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