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6 15:39
수정 : 2018.05.16 15:39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8월 7일 한겨레신문 4면 ‘편집국에서’
장윤환 편집위원장
서독에서 만났던 하랄트 바이스 기자(SWF 정치부장)가 '한국특집'을 위해 서울에 왔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통역을 데리고 나타난 그는 2주 동안 취재를 하면서 여야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학생, 노동자, 빈민 등 각계각층을 광범하게 만났다고 말하고, '취재원'에 대한 대접 삼아서 인지 '한겨레신문'에 걸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기대를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이스 기자는 기독교나 민간인권단체들이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정작 정당 쪽은 사회정의 차원에서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그는 서구에서는 보수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는 기독교가 한국에서는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바이스 기자는 특히 한국국민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통일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가 만난 노동자들을 예로 들었다. 올림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노동자들은 “정권유지를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올림픽이 '통일'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생활이 너무도 형편없는 상태에 있는데 당장 자신들의 복지나 분배 정의를 위해 투쟁해야지 무슨 여유가 있다고 '통일문제'에 신경을 쓰느냐고 했다. 바이스 기자의 질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통일이 밥 먹여 주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서독과 한국의 거리가 지도상의 그것보다 엄청나게 멀다는 사실을 참담하게 절감하면서, 한국인이면 누구에게나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문답식'으로.
―방금 당신은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있어 한국 기독교가 수행하고 있는 역할이 놀랍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건 서독에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민주화'나 '통일'을 주장하면 곧바로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기독교가 '민주화'와 '통일'에 관해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잘 모르겠다.
―가장 반공적인 기독교가 '민주화'나 '통일'을 주장할 경우, 적어도 곧바로 공산주의자로 몰릴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아, 그건 그렇겠다.
―그것이 기독교 '일부'가 '민주화'와 '통일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통일'의 관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글쎄, 잘 모르겠다.
―좋다. 그럼 다시 시작하자.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익과 복지를 쟁취하자면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야 물론이다.
―그런데 역대 독재정권은 '국가 안보'를 구실로 내세워 노동쟁의 등 노동운동을 극력 탄압해 왔다.
〓노동탄압은 독재정권의 속성이다. 한국 고유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튼 좋다. 노동운동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으려면 우선 노동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이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사실은 '정권안보'를 의미하지만, '국가안보'를 최고가치로 내세우는 독재정권이 한국에 존속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바로 그것이다. 노동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이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발판을 빼앗는 길이 바로 '분단의 극복', 즉 '통일'이다.
〓아하, 그렇구나!
안경 너머로 거의 눈을 감다시피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감탄하는 바이스 기자에게 필자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노동자가 제 밥그릇을 찾아먹기 위해서도 '통일은 필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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