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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6 16:48 수정 : 2018.05.16 16:48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0년 1월 9일 한겨레신문 5면 ‘아침햇발’

장윤환 논설위원

장윤환 논설위원
국민들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증언에서 전두환 씨가 '해명문'을 낭독하다가 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중단하고 백담사로 되돌아갔는데도 '5공 비리는 청산되었다'는 것이다.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이 "전 씨의 증언에는 미흡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미진한 부분은 역사의 장으로 넘기자"며 5공 청산 종결을 선언하자 야 3당도 그 강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맞장구를 치고 있다. 70%가 넘는 국민들이 "아직 5공은 청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그렇다면 5공 청산은 국민대중을 선반에 올려놓고 정치인들끼리 하는 '정치놀음'이란 말인가?

5공 청산의 실무총책이었던 민정당의 박준규 대표가 '민정당 해체'와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까지를 포함하는 '정계개편 대구상'을 밝혔다가 여권의 거센 반발에 밀려 물러나자 민정당은 '5·16' 때 국가재건 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낸 인물을 당 대표로 임명하고 광주 민주항쟁을 '진압'한 공로로 무공훈장을 탄 4성장군 출신을 사무총장에 '5공의 5인방' 가운데 한 사람을 원내총무에 앉힌 다음 눈앞에 닥쳐온 지자제 정국을 새롭게 주도해 나가겠다고 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면 5월 말께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지방의회 선거가 벌써부터 야권에도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노 3김'의 4당 구조를 깨려는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보수대연합을 내걸고 지방의회 선거 전에 공화당과 합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는가 하면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는 '대원칙'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시기와 절차에 이의를 달고 있다. 또한 김영삼 총재는 통일에 대비해서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하고 있으며 김종필 총재는 내각책임제를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5 16' 쿠데타 이래 줄곧 반독재투쟁을 해온 김영삼 씨가 그 쿠데타의 한 주역이자 유신독재의 상속자를 자임하는 김종필 씨와 골프를 몇 번 쳤다고 합당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국민들은 역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두 김 씨의 속셈이다. 김영삼 씨는 공화당과의 합당을 통해 평민당을 배제한 가운데 야권 보수연합의 관리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는 듯하다. 김종필 씨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오랫동안 여당만 해온 정치인인 그는 색깔이 같은 민정당과의 연합에 더욱 관심이클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민정당의 내부여건에 밀려 차선책으로 민주당과의 합당을 고려하면서도 민정당과의 대연합 가능성에도 문을 닫지 않고 있다.

한편 4당 구조에서 제1야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색깔론'에 부담을 느끼면서 지방의회 선거에서의 연합공천을 거론하며 민주 공화 양당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또한 민주공화당의 합당 추진은 지금까지 평민 민주당의 통합을 주장해온 야당통합파에게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들의 통합 움직임에 당 수뇌부가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인데,합당이 강행될 경우 민주당의 야당통합파 가운데는 진로의 선택을 놓고 고심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서 출범을 서두르고 있는 재야 신당도 정계개편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계개편 움직임은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선거법도 개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방의회 선거를 겨냥하고 일어나는 과열현상이나 정계개편론은 '5공 청산'을 뒷전으로 밀어놓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오는 2월의 임시국회에서 4당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서 광주 희생자 보상 등을 거론하는 '성의'를 보이겠지만 그것은 체면치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듯 정부는 '5공청산'의 종결을 선언하자마자 요란한 '북방카드'를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남북교류 기금 설치,남북고위회담 적극 추진, 불가침선언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추진, 통행통신 통상 등 '3통협정' 제안 등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찬양 고무 이적'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보안법을 안기부가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게 하는 안기부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민족화합을 들먹이며 북방카드를 내놓으려면 먼저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 등 반민주악법들을 개폐해야 한다. 6공이 들어선 뒤 여소야대 국면에서 그 두 가지 대표적 악법의 독소적인 부분을 개정하기로 여당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을 기화로 한 '공안정국' 속에서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 개폐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거나 실종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야 3당은 다음 임시국회에서 보안법과 안기부법 등 악법을 개폐함으로써 진정한 5공 청산을 하기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계개편론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국민대중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계개편은 국민의 요구에 바탕해야 한다. 제1야당 쟁탈을 노린 개편론이나 의석 확보에 집착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달할 뿐이다. 국민의 관심은 악몽 같은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국가를 세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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