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5.16 17:29 수정 : 2018.05.16 17:29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0년 2월 6일 한겨레신문 5면 ‘아침햇발’

장윤환 논설주간

장윤환 논설주간
우리나라 경제는 지난 80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중 무역수지 적자는 통관기준 6억6천2백만 달러로 85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소비자물가 또한 지난 한 달 사이에 1%가 올라 9년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을 남겼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연말에는 물가상승률이 10%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특히 21년만의 최대 적설량을 기록한 이번 폭설로 채소류 등 농수산물값이 20%나 뛰어 물가의 뜀박질을 선도하고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경제기획원은 지난 1월에 물가가 급등한 것은 새해 연휴와 설날 전후에 농축수산물값이 크게 오르고 학원비 등 개인서비스요금이 연말연시에 한꺼번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공공요금을 강력히 억제하고 전기, 전화, 도시가스 요금을 인하하며 90년산 쌀수매량을 축소하고 공산품 할당 관세를 확대하며 정부미를 조기에 방출하고 기름값 안정관리와 함께 향락업소의 허가요건을 강화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물가가 급등한 것은 정부의 경기부양책 등에 따른 통화 팽창과 부동산값의 지속적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의 증가 등으로 과소비풍조가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따라서 물가의 고삐를 잡기 위해서는 요금인상 억제 등 대증치료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를 착실히 추진하고 과소비 등 물가 불안요인을 근본적으로 잡아야만 한다.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기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수대연합에 충격을 받고 그 부당성을 성토하던 많은 국민들은정부가 갑작스럽게 경제위기를 들고나오자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다. 노동부가 임금인상 억제를 노린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전노협에 가입한 1백60개 노조에 대한 업무조사권을 발동하는가 하면 전노협과 맞서고 있는 경제단체협의회가 올해 임금인상 7%선을 제시하고 나오고 정부도 올해 임금억제선을 전 업종 평균 7%로 결정했다. 7%선이라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반발이 내다보이는데도 정부가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뿐만 아니다. 3당 통합의 민자당은 토지관계 법률과 금융실명제의 실시를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자 국민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다. 보수대연합의 '경제적 본질'을 보게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동 탄압으로 사용자의 이익을 지켜주고 재벌기업에 유리한 경제정책을 펼침으로써 정치자금을 풍족하게 확보하는 등 정경유착을 더욱 굳건히 해 "보수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 '태평성대'를 길이 누려가자"는 '공공연한 음모'인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인들은 우리나라 경제가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상품을 개발할 능력이 없고 지나친 임금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했으며 설비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려 해도 기업이윤이 적어 투자여력이 없는 데다가 노사분규에 따른 납기 지연과 불량품 증가로 거래중단이 늘고 수출 기조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비명을 질러왔다. 이런 기업인들의 주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기아임금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으며,재벌기업이 10조 원에 이르는 토지를 소유한 채 매년 수백억의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변명하겠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노동자들의 이런 질문에 기업인들이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는 가운데 민자당은 지금까지의 복지와 분배 우선의 경제정책을 벗어나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기조를 바꾸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통합추진 관계자는 "4당구조 아래서의 지난 2년 동안 강력한 정책을 실현하자는 '분배우선론'과 안정 위에 개혁을 실현해야 한다는 '성장우선론'이 맞서 과도기적 혼란을 초래했고 이것이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진단하고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분배우선 정책에서 기업가의 투자의욕과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강력한 '성장드라이브정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와 같은 정책기조 위에서는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제도 등 기업의 투자의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정책들이 예정대로 추진되기는 어렵다"고 속셈을 털어놓는다.

복지와 분배우선의 정책을 펴왔다는 지난 2년 동안에도 노동탄압이 극심했다는 것은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성장위주'로 못 박고 나가는 앞으로의 경제정책에서 노동탄압이 어떠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묻는다. 보수대연합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없는 '혁신'을 만들어 탄압하려는 음모라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보수적 정객들과 경제인들의 '태평성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87년 6월의 민중항쟁과 '6·29 항복선언'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고 싶다는 것인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장윤환의 글로 남은 한평생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