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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6 17:42 수정 : 2018.05.16 17:42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0년 2월 20일 한겨레신문 5면 ‘아침햇발’

장윤환 논설주간

장윤환 논설주간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이 너무나 통하지 않아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정색을 하고 주장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지방자치에 관한 논의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직접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 즉 대의제도라는 것이 생겨났다. 대의제도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에 관해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정당을 만들게 되었고 당원들뿐 아니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그 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시킨다. 정당은 공공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데 관여하고, 특히 정치 생활에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고무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정치 과정을 통해 해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정치는 곧 '정당정치'로 불리기도 한다.

지방정치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지방자치 또한 정당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는 지방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를 극대화시킴으로써 간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더 많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지지의 확대를 통해 정치적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정치의 훈련장이자 정당정치의 실험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합당해서 만든 민주자유당의 박준병 총장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정당 추천 배제 문제를 거론하고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4당이 정당 추천제에 합의했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기초 광역자치단체 의회선거에서 정당추천을 배제하되, 평민당과의 협상이 불가피할 경우 시 군 구 기초단체의 정당추천 배제만은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여소야대'의 4당 시절이던 지난해에 열린 정기국회는 회기 마지막 날인 12월 19일에 본회의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정당 추천제는 물론 연합공천도 가능한 것으로 명시했다. 이런 내용은 본회의에 앞서 지자제 법 중 타결되지 않은 조항들을 협의하기 위해 모인 여야 4당 정책위의장들과 지자제소위 위원들의 연석회의에서 민정당 쪽의 제안으로 삽입되었다. 당시 국회 관계자는 "민정당이 '야당들' 쪽의 정당 추천제를 수용하면서 일부 취약지역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연합추천제를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정당의 불모 지역인 호남에서 연합추천을 통해 평민당 후보 전원 당선을 막아보자는 고육책이었던 것이다.

민주 공화 두 당이 허둥지둥 민정당과 합당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그 속셈을 읽고 있었다. 민주 공화당은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공포감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영등포 을구 재선거에서처럼 참패를 당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신사고'니'구국적 결단'이니 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에 끼어들겠다는 야심과 함께 그런 공포감도 합당을 촉진하는 데 일정한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정 민주 공화 3당의 합당으로 민자당이 거대 여당이 된 지금은 박준병 총장의 말 그대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구태여 연합공천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자당은 민정당의 당초 주장을 되살려 기초자치단체는 물론 광역자치단체의 의회선거에서 정당 추천제를 배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되고 보면 국민들은 구민주 공화당 사람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시절에 주장하거나 합의한 정당 추천제의 논거는 어디로 갔는가? 책임 있는 정치인이 때와 장소에 따라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신사고'요 '구국적 결단'인가?

지방의회 선거에서 정당추천을 배제하려는 민자당의 기본적인 발상은 민자당의 체질인 반민주성에서 비롯된다. 권위주의적 통치에 익숙해진 여당의 체질로서는 지방자치제 같은 것은 아예 실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효과적'인 통치를 하는 데는 중앙집권이 최선이며 권력의 분산 이양을 의미하는 지방자치는 낭비라는 발상이다. 집권당의 이런 저의는 15인 합당추진위의 한 핵심인물이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가 협소한 데다 일본과 달리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제를 고수해 왔기 때문에 시 군 구의회 구성은 우리 정치문화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기초자치단체인 시 군 구 의회구성과 단체장 선거를 유보할 뜻을 비쳤다(1월 31일 자<서울신문>).

그러나 집권당은 이런 구상을 하면서도 국민의 여론에 밀려 기초 광역자치단체의 의회선거를 실시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시 군 구 의회선거에서는 정당 추천제를 배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단체의 의회 구성에 정당이 끼어들면 지방행정까지 '정치에 오염'된다는 주장인데,그것은 "지방에는 행정만 있고 정치는 없다"는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공간인 이상 지방에도 정치가 있다. 따라서 주민이 지방정부의 정책에 참여하여 정책 집행의 결과를 감시해야 한다. 이런 정치과정은 민주정치의 훈련장이자 정당정치의 실험실인 지방자치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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