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6 18:03
수정 : 2018.05.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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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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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0년 6월 27일 한겨레신문 12면 ‘아침햇발’
장윤환 논설주간
베를린 분단을 상징하던 '찰리 검문소'가 지난 22일 공식으로 철거되었다. 동·서 베를린을 잇는 주요통로로 서쪽 초소는 미국·영국·프랑스 3개국 연합군이, 동쪽 초소는 소련군이 관장해온 이 검문소는 연합군사령부 '코만단투어'와 함께 베를린이 아직도 4대 전승국의 점령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같은 날 동베를린에서 열린 이른바 '2+4' 회담의 '식전행사'격으로 치러진 찰리 검문소 철거식에는 동·서독 외무장관은 물론 미국·소련·영국·프랑스의 외무장관들도 당연히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통독작업의 물꼬를 튼 동·서독은 이 철거식을 한껏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통독을 위한 '2+4 공식'에서 동·서 양독끼리는 이미 순풍에 돛을 달고 있는 만큼 이제는 4대 전승국인 미국·소련·영국·프랑스도 빨리 어떤 결론을 내리라는 압력용으로 말이다. 동·서독 정부의 이런 의도는 같은 날 서독 연방상원이 동·서독의 화폐·경제·사회 통합에 관한 '국가조약'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사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국가조약'에 관한 양독의회 절차가 모두 끝남에 따라 동·서독은 7월1일부터 통화·경제·사회적인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는 12월 동·서독 연방 총선이 합동으로 치러짐으로써 독일통일이 민족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완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독일통일 문제는 전승국들의 승인과 주변국가들의 '양해'가 뒤따라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독일통일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쟁점은 통일독일의 위상, 다시 말해 통일독일이 '제4제국'으로 빗나갈 가능성을 극소화시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샴페인을 터뜨리며 포옹하는 감격적 장면들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남북한 관계의 현실을 새삼스러울 정도로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동·서독의 발 빠른 통일노력을 접할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베를린에서 직접 목격되는 현상은 반드시 '장밋빛'만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독일통일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관해 적어도 서독국민들 사이에는 이렇다 할 합의가 없다는 사실이다. 독일통일을 서두르는 세력은 서독의 콜 수상이 이끄는 집권 기독교민주연합(CDU)과 동독의 드 메지에르 수상이 대표하는 기독교민주연합 중심의 집권 독일연맹이다. '세기적 사변'으로 묘사되는 통독의 열기 속에 치러진 지난번 서독 연방 상원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사회민주당(SPD)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 콜 수상은 “쇠도 달았을 때 치라”는 격언에 따라 동독의 기독교민주연합 세력이 인기를 유지하는 동안 12월에 합동 총선을 추진함으로써 정권을 굳히겠다는 계산이다. 동독의 집권세력 또한 그들대로 동독의 '서독화'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동원하여 12월 연방선거에서도 승리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동독의 경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시장경제형 자본주의 체제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2백만 명 정도의 실업이 예측되고 있다. “조만간 실업자의 대열에 끼게 될 동독의 노동자·농민들이 기독교연합에 표를 던짐으로써 '자해행위'를 했다”는 서독 지식인들의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서독국민들 또한 값싼 동독 노동력의 서독 유입에 경계심을 갖고 있다. 그런 현상은 서베를린의 '밤거리 여인들'의 세계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서독 국민들로서는 교육·의료·주택 부문 등 지금까지 누려오던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상당한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교환가치가 3 대 1 또는 6대1에 불과하던 동독화폐와 서독화폐를 1대1로 통합하는 바람에 서독은 1천2백50억 마르크의 돈을 새로 발행해야 하고,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서독은 동독의 재정적자와 대외채무 등을 떠맡음으로써 7백억 달러의 재정부담을 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독은 3배가 넘는 인구와 5배가 넘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6배에 가까운 경제력으로 동독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서독이 동독을 사들이는 재정부담을 2천억 달러로 추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7백억 달러의 재정부담이라면 서독 집권세력과 재벌들로서는 그다지 큰 짐은 아닌 듯하다. 집권세력으로서는 정권 유지가 가능하고 재벌들로서는 동독의 값싼 노동력과 '어리숙한' 시장이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 동·서독이 화폐명칭을 정할 때 동독이 '오스트마르크'(동독마르크)로 명명한 데 반해 서독은 '베스트마르크'(서독마르크)로 하지 않고 '도이체마르크'(독일마르크)라고 했을 때부터 서독은 동독을 '사들이기'로 작심했던 것 같다.
숨 가쁠 정도로 빠른 진전을 보이는 동·서독에 비해 너무나 현상고착적인 한반도의 통일문제에서도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 이후 독일식의 '2+4 공식'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남북한 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하지만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4대 관련 강대국인 미국·일본·소련·중국의 남북교차승인을 통해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4+2 공식'인 셈이다. 그러나 '2+4 공식'이든 '4+2 공식'이든 통일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역시 남북 간의 관계 증진이다. 그러므로 “'2+4 공식'이 나오기까지,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이전에 이미 매년 2백73만 명 이상의 동독 시민과 5백22만 명 이상의 서독 시민이 상호방문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겐셔 서독 외무장관의 말은 새겨들어야 할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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