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4 17:41
수정 : 2018.05.14 23:00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6월 23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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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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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초에 대학가에서 개헌 서명운동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경찰에 붙잡혀간 1백 수십 명의 학생들이 전원 구속된 일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규모의 무더기 구속사태는 보기 드문 일이었고, 더구나 '전원구속'이라는 것도 거의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 약한 우리들로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더욱 놀라왔던 것은 이 학생들이 연행된 직후에 경찰의 '연행 학생 전원 구속방침'이라고 하는 보도가 나오고 그다음 날엔가 검찰에서 역시 같은 발표를 하더니 뒤이어 법원에서 연행 학생 전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판사의 직권인지, 아니면 검찰 또는 심지어는 경찰의 권한에 속하는 일인지조차 알기 어렵게 되어버리는 것이고, 이 무렵 법원이 '검찰 또는 경찰의 영장 담당 부서'로 전락하였다는 혹평이 나오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그 후 건국대 사태에서도 더 큰 규모로 되풀이되었으나 다만 영장 담당 판사들 가운데 약간의 '반발'이 있어서 영장이 신청된 피의자들 중 그야말로 일부 극소수가 영장기각 또는 '보류'로 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에는 도리어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게끔 되었다.
그 전해 초여름에는 경찰이 문공부 직원들과 함께 대학가의 서점들을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급습하여 진열된 서적들을 대량으로 수거해간 일이 있었다. 이때 영장 없는 불법 압수수색을 비난하는 세간의 여론이 비등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직후부터 경찰이 매번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틀림없이 받아내어 보란 듯이 '합법적'으로 서점들과 사회단체 사무실을 뒤지며 서적이고 유인물이고를 닥치는대로 쓸어가는 것이었다. "왜 법관이 발부된 영장도 없이 제멋대로 뒤지고 쓸어가느냐"고 경찰을 비난하던 우리 국민들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실정이었다고나 할까, 참으로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사법부에 걸었던 우리의 애달픈 기대가 너무나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길거리에서 개헌 서명을 받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하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법이 집행되던 그 어두운 시절에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이 난 일이 몇 건이나 있었던가? 그 숱한 고문 피해자들의 호소에 법원이 귀를 기울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이제 와서 되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은 이런 얘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사법부를 위하여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를 다 함께 숙고해 보자는 뜻에서이다.
사법부는 '혁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비상한 개혁과 쇄신을 필요로 하며, 이것을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비상한 개혁에 적합한 인물, 권력에 저항할 '배짱'이 있고 '재야기질'이 있는 인물이 전국 법관의 인사권을 한 손에 쥔 사법부의 수장으로 선임되어야 한다. 현직 대법관 등 사법부의 '현 체제' 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사람을 또다시 대법원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일이다. 둘째로 법관들 스스로가 지금까지의 사법권 침해사례를 조사·수집하고 사법부의 권위가 실추된 원인을 하나하나의 사안에 비추어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적어도 앞날을 경계할 자료로써 활용하여야 한다. 셋째로, 현저한 과오가 있는 법관들은 그들이 봉직하여 온 사법부의 앞날을 위하여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김용철 대법원장이 젊은 법관들의 충정을 감싸면서 퇴임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으나 서명 파동이 있기 전에 진작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였던 것은 참으로 애석하다. 이것을 거울삼아 스스로 인책의 결단을 내리는 법관들이 늘어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급속도로 회복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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