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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4 18:08 수정 : 2018.05.14 22:57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7월 21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민주주의는 참으로 의심이 많고 걱정이 많다. 국가권력을 믿을 수가 없어서 입법·행정·사법의 3권으로 쪼개어 각기 독립된 3부에 맡겨놓고, 그나마도 미덥지 못하여 그 3부가 서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갖가지 세심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도 그 중 한 가지다. 국회란, 이념상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표자들로 구성된 국민 대표기관이며, 따라서 국회의 의사는 곧 국민의 의사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원칙이다. 그러나 그 뽑힌 대표자들이 애초부터 국민이 실수로 잘못 고른 사람일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임기 도중에 '변질'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국회가 도리어 국민의 의사와 이익에 명백히 반대되는 배신적인 입법 활동을 하는 뜻밖의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 대비하여 '의회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써 대통령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 바로 '거부권'인 것이다.

그런데 적절한 경우에 적절히 사용되면 기사회생의 묘약이 될 수 있는 비상이 자칫 잘못 쓰이면 생사람을 잡는 독약이 되어 버리듯이,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비상수단 역시 함부로 남용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폭약이 될 수 있다. 4·19 직전에 시위군중에 대하여 발포명령을 내렸던 책임자가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 말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거부권도 헌법상 규정되어 있다고 하여 무턱대고 아무 때나 행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노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안과 국정감사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서, 우리는 과연 거기에 합당한 근거가 있었는지를 따져 보고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무작정 반복되어 좋을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우선, 정부·여당 쪽에서 이 법안들이 '삼권분립의 정신에 위배'되는 '위헌 법률'이라고 주장하고 나온 데 대해서, 나는 대체 이 법안들의 어떤 내용이 헌법의 어떤 조항에 위배되며 어째서 '삼권분립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구인제'를 두고 논란을 하는 것 같은데, 서독 헌법 제44조를 보면 연방하원은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증거조사를 할 수 있고, 그 증거조사에는 불출석 피의자에 대한 강제연행 규정 등을 포함하는 '형사 절차에 관한 규정들'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의회 출석을 거부하는 증인에 대해서는 '의회 모독죄'를 적용하여 아예 의사당 옆에 감금시설까지 차려 놓고 우리 무술경위쯤 되는 국회 관리를 시켜 회기 동안 감금해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구인제를 두고 위헌이니 뭐니 하며 국민을 우롱하는 것은 아무래도 거부권 행사의 진정한 동기를 숨기기 위한 구차한 연막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안다. 전두환 씨가 국회 증언대에 불려 나오는 일이 그렇게도 끔찍한 일인가? 전 씨가 안심하고 국회의 권위를 모독할 수 있도록 비호해 주는 것이 과연 현 정부의 할 일인가? `자진 해명'이란 것이 과연 현 정부가 내세운 '제5공화국 비리 척결'의 귀착점이었던가? 이번의 거부권 행사로 국민 누구나가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다. 아무래도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생겨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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